[한-러 정상회담]물류-에너지 협력 길 터
○ 물류부터 뚫고 에너지는 경제성 봐서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물류와 에너지가 양대 축이다. 물류 분야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 장기적으로 부산부터 유럽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통한 철도 연결이 핵심이다. 에너지 분야의 축은 전력망, 가스관, 송유관 등 에너지 인프라 연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에너지 분야, 특히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취임 첫해인 2008년 이후 정상회담 때마다 이를 거론하며 2015년부터 30년간 연간 750만 t의 러시아산 PNG를 도입하고 러시아 국경에서 북한을 통과해 한국으로 연결되는 가스배관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에 가스관 매설이 불가능해져 흐지부지되면서 러시아 측과의 신뢰도 잃었다는 게 현 청와대의 분석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조기 추진과제로 양국이 합의한 나진(북한)-하산(러시아) 물류 사업은 이미 상당히 진척된 프로젝트라 실현 가능성도 크고, 러시아의 지분을 우리 기업이 인수하는 형태라 정부의 부담도 적다. 남북러 3각 프로젝트인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 향후 유사한 사업도 도모할 수 있고 TKR-TSR 연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반면 전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PNG 사업은 중장기 정책으로 돌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PNG 사업과 남북러 전력망 연계 사업 등은 북한 변수도 크지만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출발점
정상회담에서는 유라시아 지역 개발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이날 양국 정상이 합의한 대로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면 수에즈 운하보다 10일 정도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물류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극항로 지역 항만개발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조성됐다.
양국은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우리 기업이 러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3척 이상을 수주하는 내용과, 2020년까지 러시아가 계획 중인 태양광 발전소(500MW·1조8000억 원 규모) 건설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시베리아 극동지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양국 공동 투·융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우리 기업이 러시아 시장에 참여할 때 30억 달러 규모의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성과다. 양국 정상은 일반여권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해 앞으로 일반여권 소지자들은 60일 동안 비자 없이 상호 국가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양국에 문화원도 새로 생긴다.
▼ 대북제재 5·24조치 빗장 열리나 ▼
국내기업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
2008년부터 49년 동안 나진∼하산 철도 54km 개보수, 나진항 3호 부두 개발 및 운영, 나진구 21ha 개발 및 운영권을 갖는 총사업비 3억40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다. 올해 7월에 철도 개보수 작업은 완료됐고 나진항 화물터미널 건설공사는 9월에 완료됐다. 포스코, 현대상선, 코레일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북-러 합작회사 ‘라손콘트란스’의 러시아 지분 70% 중 절반 정도를 인수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인수 규모는 내년 상반기에 실사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다.
향후 이 프로젝트의 변수는 역시 북한이다. 북한에 가스관을 매립해야 하는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사업보다는 현실성이 높지만 북한 지역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에서는 포괄적 대북제재인 ‘5·24 조치’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내년 상반기 현지 실사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북한 나진에 들어가야 한다. 러시아 지분을 인수하는 간접투자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돈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북한의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5·24 조치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5·24 조치 해제 수순으로 간다고 연결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실제 돈이 투입될 때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계속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모든 대북 관계에 있어 5·24 조치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해 5·24 조치의 탄력적인 운영을 시사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