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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하정민]박진영과 베르그루엔의 공통점

입력 | 2013-11-15 03:00:00


하정민 국제부 기자

국내 3대 연예기획사의 하나인 JYP의 수장 박진영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아직 집과 차가 없다. 나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다른 프로그램에선 전세로 사는 2층 저택을 소개했다. 넓은 정원에 농구장과 헬스장까지 갖춘 이 집의 전세금은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무척 비쌀 것이다.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의 최대주주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은 ‘집 없는 억만장자(Homeless Billionaire)’로 유명하다. 그는 20억 달러(약 2조1440억 원)의 재산이 있지만 아이폰, 정장 3벌, 전용기만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의 전용기는 웬만한 대저택만큼 비싸고 그가 묵는 세계 특급호텔의 스위트룸 가격은 하룻밤에 수백만, 수천만 원이나 한다.

집만 없을 뿐 상당한 재력을 갖춘 이들이 왜 ‘물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걸까. 두 사람의 사례는 고 스티브 잡스와 20세기 초 천재 철학자로 불렸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잡스는 평생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수했다. 이탈리아산 캐시미어로 만든 그의 터틀넥은 한 벌에 66만 원인 고가품이었지만 대중은 그의 옷차림이 허름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물욕과 허영을 상징하는 패션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고독한 천재 혁신가’ 잡스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비트겐슈타인의 부친은 오스트리아의 대부호였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유산을 형제자매에게 주고 평생 허름한 집에서 해진 옷을 입고 살았다. 당시 젊은 철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을 우상처럼 숭배해 그의 허름한 옷차림, 독특한 말투와 제스처를 흉내 내려 애썼다.

‘부를 하찮고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듯한 태도’는 진짜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그들을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엄청난 카리스마와 아우라까지 안겨 준다. 이런 이미지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잡스가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과 루이뷔통 슈트케이스에 집착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이 유산으로 술과 여자에 탐닉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지금까지의 명성과 존경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부를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먹고살기 힘들어 부를 하찮게 여기기란 더욱 힘들다. 그래서 부자들이 물욕이 없는 듯이 처신하는 게 오히려 어떤 계산이 깔린 게 아닌가 싶어 불편할 때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의 여주인공 미도리는 잡화상의 딸이다. 교육에 열성인 미도리의 부모는 그를 세도가의 딸이 신부 수업을 받는 귀족학교에 보낸다. 미도리는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말한다. “친구들이 가끔 ‘나 지금 돈 없어. 좀 빌려줘’라고 말해요. 하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절대 돈을 빌려 달라고 할 수 없어요. 걔들은 잠시 지갑을 두고 왔지만 나는 정말 돈이 없으니까.” 박진영과 베르그루엔을 보는 내 심정이 미도리 같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