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가 14일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현역 유니폼을 완전히 벗었다. 숱한 추억 속에서 한일전은 남다른 감정이었다. 자신이 나선 모든 한일전을 이기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아듀! 이영표
그가 한국축구·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다
애국가 울리고 가슴에 손 올릴 때면
내가 아닌 우리를 느꼈다
일본전 전승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
난 80점 선수…즐긴 것은 100점
후배들아, 좋은 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돼라
‘초롱이’ 이영표(36)가 1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그의 축구인생을 오롯이 담아내기에 너무나 짧았던 3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터뷰 룸을 가득 메운 취재진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우문도 현답으로 바꾸는 이영표 특유의 기질은 여전했다. ‘인생 최고의 경기를 꼽는다면’이라고 묻자 그는 “한 경기를 꼽기에 다른 경기들을 무시하는 것 같다. 특정 경기만 지목하면 다른 경기들에 너무 미안할 것 같다. 국가를 위해 뛰었다는 게 얼마나 의미가 큰지 가슴 깊이 느껴왔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모든 경기가 의미가 있고, 소중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회견 중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가 나왔다.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순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던 이영표가 입을 열었다.
“특별히 아쉬운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굳이 꼽는다면 일본전이다. 특히 2010남아공월드컵 직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한일전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가 2-0으로 이겼다. 그 때 5-0으로 이기지 못한 게 아쉽다. 아마도 내가 뛰었던 일본전 전적이 3승4무로 기억하는데, 4무가 안타깝다. 7전 전승이 아니라서 아쉽다.”
● 일본을 지배한 작은 거인
이영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177cm 67kg)이지만 그라운드에선 항상 거인이었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는 더욱 강했다.
1999년 6월 코리아컵 멕시코와 대결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영표가 경험한 첫 번째 한일전은 2000년 4월 친선경기였다. 1-0 승. 그 때부터 일본전에서 기분 좋은 추억이 계속 됐다. 이영표가 태극마크를 반납한 무대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 한일전이었다. 결승 진출을 놓고 대회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 조별리그부터 8강까지 파죽지세의 한국이었지만 연장까지 120분 혈투를 벌이고도 2-2로 비겨 승부차기를 벌였다. 승부차기에서 졌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무승부다. 대표팀 마지막 한일전을 마친 이영표로서는 너무나 아쉬운 경기였다.
대표팀에서 이영표의 빈 자리 찾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대표팀을 떠난 뒤 처음 치러진 한일전은 2011년 8월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친선전이었다. 결과는 0-3 패배. 참사로 이름 붙여진 그날 경기는 이영표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도 함께 떠났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영표 없는 수비진이다”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영표가 은퇴하는 날 한일전을 언급한 건 분명히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꺾지 않고서는 아시아 최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 위한 애정 어린 조언이 아니었을까.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