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와 그의 시대 (허문명 지음|블루엘리펀트 펴냄)
장면1. 1974년 민청학련 선고구형 때의 일. 비상군법회의는 긴급조치 4호를 위반한 김지하 등 7명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병곤도 김지하와 함께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사형이라는 영광스러운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젊은 목숨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장면2. 10·26 그날 그 현장. 김재규가 오른손으로 김계원 실장을 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각하를 똑바로 모시십시오!” 그리곤 권총을 꺼내들고 차지철을 향해 외쳤다. “차지철 이놈아!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무슨 정치를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김재규는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총알이 차지철의 손목을 관통했다. 김재규는 작정한 듯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각하도 죽어 주십시오!” 그의 두 번째 총알이 대통령을 뚫고 지나갔다.
‘김지하와 그의 시대’(사진)는 4·19부터 10·26까지 이데올로기를 넘어 삶의 관점에서 기록한 한국 현대사다. 말하자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모두를 한국 현대사를 이끈 두 축의 기둥이라는 관점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은 현대사인 셈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아티클 하나하나에는 마치 독자가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다. 김지하의 시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쓴 듯 하다. 책장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넘어간다. 눈치 챘겠지만 이 책은 동아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동명의 시리즈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통일한국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통합된 역사관을 정립해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절실함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편향된 시각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적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념을 떠나 대한민국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다.’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잇따른 좋은 평가는 이 책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