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필리핀 한인 “20년 쌓은 생계터전 잃었다” 눈물

입력 | 2013-11-15 03:00:00

생지옥 타클로반 5信
필리핀 ‘괴물 태풍’에 현지 한인들도 직격탄




파도에 휩쓸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한명학 씨가 14일 물에 잠긴 타클로반 공항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타클로반=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슈퍼태풍 ‘하이옌(海燕)’이 필리핀을 강타한 지 7일째. 14일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타클로반은 점차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구호품을 실은 군용트럭이 오가고 가구당 3kg씩 쌀도 배급됐다. 한국 정부의 수송기도 이날 오후 세부에 도착했다. 외교부는 이날까지 연락이 두절된 한국인이 총 17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 파도 덮치는 트럭 속에서 하루 버텨


타클로반에서 컴퓨터 가게 및 노래방기기 대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한명학 씨(66)는 태풍이 덮칠 때 노래방에 남아 있다 해일을 맞았다. 그는 8일 아침 큰 파도에 휩쓸렸지만 극적으로 15t 덤프트럭을 붙잡았고 천신만고 끝에 운전석으로 기어 들어가 하루가량을 굶은 채 버텼다. 14일 기자와 만난 한 씨는 “5분에 한 번꼴로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트럭이 뒤집힐 것 같았다. 당일 밤새 불안에 떨었다”고 회상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동수단을 찾지 못한 한 씨는 12일 오후 겨우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은 폭우로 1층이 모두 침수됐다. 특히 1층에 있던 컴퓨터들이 몽땅 물에 잠겼다. 한 씨는 “20년 동안 필리핀에서 쌓은 생계 터전을 잃었다”며 망연자실했다.

한국에 시집온 필리핀 출신 H 씨(25)는 연락 두절로 생사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이날 타클로반 외곽 사마르 주 산타리타 마을에서 15개월 된 아들과 함께 외교부 신속대응팀을 만났다. 대전이 시댁인 H 씨는 원래 내년 1월 귀국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가 피부병을 앓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의 공군 수송기로 이르면 15일 한국에 올 예정이다.

○ 국제사회 지원 가속화


국방부는 외교부 등 관련 기관과의 회의를 통해 군 수송기를 준비했다. 1차로 14일 오전 6시 식품 텐트 담요 정수제 등의 구호물자 20t을 C-130 수송기 2대에 실어 타클로반으로 보냈으나 공항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세부로 회항했다. 2차로 15일 오전 6시 C-130 수송기 3대가 해외긴급구호대 40명 및 구호물자 10t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난다.

이미 수송기 4대를 투입한 미국은 이날 MC-130 수송기 8대, 신형 수직이착륙기 MV-22 오스프리 등을 동원했다. 특히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 함정들도 이날 피해지역에 도착했다. 미국은 이번 주말까지 구호활동을 하는 미군 병력을 현재보다 3배가량 많은 1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도 타클로반 지역 이재민 1만 가구에 위생키트 등을 전달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역시 5만 명의 이재민에게 쌀 등 구호물자를 지원했다.

일본은 1000명 규모의 자위대원을 파견한다. 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의 925명 파견을 넘어서는 자위대 해외 긴급구호 활동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 정부는 함정 3척과 수송기도 파견할 방침이다. 당초 1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해 ‘쥐꼬리 지원’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중국은 14일 지원 규모를 160만 달러(약 17억700만 원)로 늘린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는 14일까지 세계 36개 국가와 기관들이 모두 870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한편 필리핀 정부는 하이옌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13일 2300명을 넘어섰다고 공식 집계했다. 특히 타클로반 지역 방송 기자 등 최소 11명의 언론인도 숨지거나 실종됐다. 2300명은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이 내놓은 최대 사망자 추정치 2500명에 근접하는 수치다. 아키노 대통령은 1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보도를 “과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타클로반=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 주성하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