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용역업체와 수의계약서 입수업무중 사고는 모두 하청업체 책임… 노조활동 금지… 근로자 해고 가능
동아일보 취재팀은 2013년 서울대가 학교 배관 및 전기시설을 관리하는 중소기업 W사와 맺은 수의계약서를 11일 입수했다. 취재팀은 이 계약서를 13일 대한법률구조공단 및 로펌 변호사들에게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 일방적인 ‘서울대 우위’ 조항
변호사 A 씨는 “무조건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겨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업체나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원인으로 사고가 나면 서울대도 일정 부분 보상해야 한다”며 “만약 재정능력이 약한 하청업체가 사고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하면 다친 근로자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해서 근무량이 늘어도 추가 보수는 지급하지 않고 관리 인력도 늘릴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서울대에는 총 221개 동의 건물이 있고 5개 동을 추가로 짓고 있다. 이를 관리하는 W사 근로자는 162명. 변호사 B 씨는 “인력도 늘리지 못하게 하고 상응하는 보수 지급도 거부하면 근로자의 업무 강도가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실상 해고권’ 행사에 기본권 제한까지
근로자의 헌법상 기본권도 막았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 내 일체의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플래카드를 걸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 A 변호사는 “적법성이나 타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노조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명백히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학내를 필요없이 배회하면 안 된다’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행위를 금한다’ 등의 조항은 근로자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W사의 한 근로자는 “우리를 마치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속상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계약서는 W사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계약을 맺은 모든 하청업체에 적용되는 일종의 표준계약서로 밝혀졌다. 서울대와 계약한 하청업체는 20곳이 넘는다. 김형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최근 다른 대학에서 근로자 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는 보도는 접했는데 우리 학교가 그럴 줄은 몰랐다”며 “학생회에서도 계약서를 자세히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시설지원과 관계자는 “20여 년 동안 써 온 계약서라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바꾸거나 삭제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은택 nabi@donga.com·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