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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현미]섹스 횟수보다 중요한 것

입력 | 2013-11-15 03:00:00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23년간 섹스리스로 산 노부부의 이혼 소송이 화제다. 그런데 소송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들 부부는 1968년에 결혼해 이미 결혼 10년차부터 성관계를 갖지 않았고 2004년 별거에 들어가 2011년 아내 쪽에서 이혼 소송을 냈다. 법적 부부로 살아온 45년 동안 룸메이트만도 못한 사이로 지내온 기간이 30년이 넘는데도 재판부는 이혼을 불허했다. 판결 이유는 이랬다. 전립샘 질환으로 성관계가 어려웠다는 남편의 주장이 수긍이 가고 “살아가면서 점점 무덤덤해져 성관계 횟수가 줄다가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게 재판부의 상식적 판단이었다. 아내가 주장한 ‘성적 유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의 집 안방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부부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서는 통계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한민국 부부의 섹스는 평균 주 1회라는 게 정설이다. 물론 연령대별로 차가 크다. 2011년 한 조사에서 4년차 미만 부부는 한 달 평균 5.5회, 5∼10년차 4.2회, 10∼20년차 2.9회로 줄어들다 20년차 이상은 3.9회로 늘어났다. 결혼 20년차 이상이면 자녀를 다 키운 부부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부부 4쌍 중 1쌍이 월 1회 이하로 사실상 섹스리스 상태라고 했다.

사실 부부의 섹스 횟수에 대해서는 일종의 ‘신화’가 존재한다. ‘숨어서 보는 내 남편의 아찔한 일기장’이라는 책을 쓴 김종태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 말로 누구네는 평균 주 3회를 한다고 하는데 막상 주위 남자들 이야기는 전혀 달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다는 친구도 있고, 국경일마다 한다는 친구도 있고, 그래도 그들은 나은 편이에요. 올림픽에 비하면.” 그 뒤로 김 씨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단다. “어차피 당신 친구들의 실상은 대외용과 다를 것이다. 당신도 부풀려서 이야기하라. 그럼 그 집에서도 십중팔구 부부싸움 날 거다.”

연령대별 부부의 잠자리에 대한 우스개가 널리 퍼져 있다. 20대는 포개져 잔다. 30대는 마주 보고 잔다. 40대는 천장 보고 잔다. 50대는 등 돌리고 잔다. 60대는 다른 방에서 잔다. 70대는 어디에서 자는지도 모른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어떤 통계 수치보다 더 현실감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여기저기서 이혼 소송이 나야 할 판인데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뭘까.

미국의 연애 전문가들이 전 세계 1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까운 친구’처럼 사는 부부가 ‘열정적인 연인’처럼 사는 부부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크리산나 노스럽 외 ‘다른 커플은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 뜨겁게 사랑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한 부부들이 꼽은 행복의 조건에서도 남녀 모두 ‘소통’을 1위로 꼽았고 ‘섹스’는 ‘우정’, ‘애정’에도 밀려 4위에 불과했다.

노인 문제 전문가인 임춘식 한남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옛말에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했다”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려면 무엇보다 배우자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점차 나이가 들면 언젠가 성행위가 불가능할 때가 온다. 그렇다 해도 같은 이불 속에서 부부가 서로 피부와 피부를 닿게 해 따뜻하게 하고 접촉을 통한 성감을 갖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섹스는 ‘몸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일 때 가장 바람직하다.” 소통하는 부부라면 때로는 포옹만으로도 충분하다.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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