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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국내 유일의 아마추어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찾다

입력 | 2013-11-16 03:00:00

열여섯 소년도 예순여덟 할머니도 “색소폰, 느낌 아니까∼”




색소폰의 깊은 울림, 가벼운 옷차림의 다양한 사람들, 휴일의 가벼운 기분이 어우러지면 매우 색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10일 오후 울산의 ‘효성색소폰스튜디오’에서 교수 의사 학생 주부들로 이뤄진 단원들이 색소폰 합주를 연습하고 있다. 이들에게 음악은 삶의 활력소다. 듣기만 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함께 연주하면서 느끼는 동료애는 또 다른 선물. “소통하는 삶을 즐기면서 세상의 근심도 잊을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는 이들은 17일 오후 5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울산 색소폰오케스트라 제7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울산=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 육중한 저음의 색소폰 소리가 울린다. 파도는 조연으로 ‘그 소리’를 더 은은하게 한다. 어떨 땐 큰 바위 같고 어떨 땐 온몸을 감싸는 포근한 바람으로 느껴지는 ‘소리’를 사람들은 동경한다.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다면….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꿈꾸는 장면이다.

10일 오후 2시 울산 남구 무거동 ‘효성색소폰스튜디오’ 지하 연습실.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악기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직업은 각각이다. 교수 의사 학생 주부… 색소폰을 사랑하기에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수준급 실력을 갖춘 단원들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정기공연을 위해 거친 호흡으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소리를 냈다.

색소폰을 시험적으로 불어 보는 튜닝 작업이지만 육중한 호흡의 색소폰 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울산색소폰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이들은 연습실에 들어서면 가볍게 차 한잔 하러 커피숍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색소폰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습실 문틈 사이로 색소폰 소리가 흘러 나가 길에 울려 퍼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국내 유일의 아마추어 색소폰 오케스트라가 그리는 가을날의 풍경이다.


꿈을 향한 연주회

김광욱 상임지휘자(46)가 지휘봉을 잡자 연습실은 정적에 휩싸인다. 정기공연 연주곡인 야코프 더 한(Jacob de Haan)의 ‘La Storia’를 연주하기 직전이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지휘봉을 쥔 손을 던지자 단원들이 숨을 내뱉는다. 색소폰 키에 올려진 손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38명의 단원들 전부가 한 악기가 되는 순간이다.

‘커피숍의 푸근함’이 절대 긴장으로 바뀐다. 가끔은 이탈된 음도 섞였지만 훌륭한 연주가 마음에 든 듯 김 지휘자의 손이 더 힘차게 움직였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 단원들. 김 지휘자가 지휘대에 지휘봉을 두 번 두드리자 10분간의 휴식시간. 손가락의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은 단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휴식시간 10분을 연습으로 대신한다. 연주회 도중 실수 없이 연주하기 위한 노력이다.

실제 연주회에서는 유려한 음악이 흐르는 것 같지만 연주 도중 항상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빠빠밤∼’ 휴식시간에 누군가 불어대는 소리가 생경하다. 최진수 단장(62)은 “오늘 왜 이렇게 손이 뻑뻑하지. 입에서 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연주회 1주일밖에 안 남았어. 모두들 파이팅 합시다”라고 말하며 단원들 마음을 다잡는다.


제2의 인생은 색소폰과 함께

단원 전부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 이들 중엔 부부 단원인 허연욱 교수(60)와 최혜영 씨(56)도 있다. 4년 전부터 교회 색소폰 합주단으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돼 단원이 됐다. 최근에는 남편의 환갑잔치를 경북 경주의 한 숲 속에서 열었다. “외국계 기업의 직장인 밴드로 활동하는 큰아들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은아들은 아프리카 전통 북을 치며 연주를 했어요. 우리는 색소폰을 함께 불었고요. 축하객들은 즉석에서 합창단이 됐죠. 환갑잔치가 숲 속 작은 음악회가 된 거죠.”(최혜영)

SK에너지 협력업체에서 정년퇴직한 뒤 울산과학대 환경화학공업과 겸임교수가 된 허 교수는 “집에 방음시설을 설치해 둘만의 공간에서 색소폰 합주를 한다”며 “그동안 먹고살기 바빠 서로 대화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 아내에게 미안해 정년 이후 더 열심히 색소폰을 분다”고 말했다. 또 “취미생활이 같다 보니 이제야 부부라는 것을 실감한다”며 웃었다. 최 씨는 “전업주부로서 무엇을 배울까 고민하다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로 색소폰을 선택했고 이를 배운 엄마를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색소폰은 의외로 손이 작은 여자에게 안성맞춤”이라고 귀띔했다.

단원 살림을 맡고 있는 총무인 주부 이현미 씨(45)가 “제 나이쯤이면 주부 우울증이 올 시기예요.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색소폰은 청량제와 같아요”라며 거든다.

현대중공업에서 지난해 정년퇴직한 최진수 단장은 가족 모두 음악과 거리가 멀었지만 색소폰을 배운 뒤 아내까지 현재 재즈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정도로 음악 가족이 됐다. 최 단장은 “부부 앙상블을 꿈꾸고 있다”며 “2년 전 딸 결혼식에서 단원 7명으로 구성된 ‘색소폰 앙상블’로 축하 음악을 연주해 하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진승희 씨(68)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색소폰을 배운 것”이라며 “울산 강동동 정자해변에 혼자 나가 트로트 ‘울고 넘는 박달재’,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을 연주하면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참 좋아한다”고 자랑했다.


삶의 활력소 색소폰, 스트레스야 가라

울산 프라우메디병원 박문형 부원장(58)은 창단 멤버로 지금까지 연주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개근생’이다. “의사의 일상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어딘가에 집중을 하며 풀어야죠. 학창 시절 악기를 배우고 싶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못 배웠어요. 악기를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죠.”

얼짱 단원으로 불리는 주부 박규리 씨(32)는 “수요일과 일요일이면 꼭 이곳에 와요. 케니지의 ‘고잉 홈’을 연주하며 손가락과 입을 풀 때면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간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악대부에서 색소폰을 불었고 결혼 이후 색소폰을 취미로 불어 생경한 악기가 아니었지만 12년 만에 다시 부는 색소폰이 쉽진 않았어요. ‘삑사리’ 정말 많이 냈죠. 장시간 연주로 무거운 색소폰이 목을 누르지만 남편이 열심히 응원해 아픔도 잊고 살아요.” 최연소 단원인 중학교 3학년생 류현우 군(16)은 “고교 입시를 앞두고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데 악기 연주는 효과 만점이다”라고 말했다.

단원들이 연주하는 색소폰은 일본의 야마하, 야나기사와, 프랑스의 셀마, 독일 줄리어스 등인데 가격은 150만 원부터 100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작별’, ‘이별’, ‘사랑’, ‘그리움’, ‘낭만’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색소폰은 19세기 벨기에 악기 수리공인 아돌프 색스가 클라리넷을 개량해 만든 악기다. 처음에는 클라리넷에 비해 소리도 크고 음역도 넓어 프랑스의 군악대에서 주로 사용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군악대뿐만 아니라 중소악단에서 많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악기로 자리매김했다. 리드(reed·관악기에서 소리를 내는 부분)를 통한 떨림판에서 소리를 내는 색소폰은 음역과 음색이 다른 7가지 종류가 있는데 소프라니노,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을 주로 사용하고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색소폰은 대중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구조상 목관악기에 속하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져 목관과 금관악기의 소리 특성 둘 다 갖고 있다.


악기와의 교감을 만드는 마에스트로

음대에서 관현악을 전공한 김 지휘자는 8년 전 부산 ‘아마빌레’ 색소폰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게스트 단원으로 참석한 것이 계기가 돼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 사비를 털어 70평 규모의 연습실을 만들어 순수 아마추어 단원을 모집했지만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보가 없어 단원들이 함께 연습을 할 수 없었던 게 초기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길게는 수개월 동안 공을 들여 화성(和聲)법과 대위(對位)법, 코드진행법 등을 접목시켜 기존 악보를 편곡해 오케스트라에 맞는 악보를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 곡을 6개월간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거북이걸음 같은 일정이지만 단원들이 소리를 맞춰가며 곡을 완성해 나아가는 희열은 대단합니다.”(김 지휘자)

17일 오후 5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울산색소폰오케스트라 제7회 정기연주회’에서는 이탈리아 가곡 비바, 가요 민들레 홀씨 되어, 가곡 그리움, 영화 올리브 OST, 민요 아리랑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단원들은 올해에도 작년처럼 1000명이 넘는 관객이 몰릴 걸로 기대한다. 기대가 현실이 되는 ‘즐거운 일이’ 거듭되면 38명 단원들의 소박한 바람인 서울예술의전당 연주회도 곧 실현될 것이다.

김 지휘자는 “공통의 관심사를 음악을 통해 풀어내는 소통의 장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며 세상의 근심까지 잊을 수 있으니 이런 행복이 어디 있겠느냐”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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