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엽. 스포츠동아DB
삼성 이승엽(37)은 아시아시리즈를 앞두고 13일 결전지인 대만으로 출국하면서 “대만에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경기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기겠다”는 다짐도 곁들였고, 결여한 의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승엽은 15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2013 A조 예선 첫 경기 이탈리아 포르티투도 볼로냐전에서 극적인 결승포를 날리며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자칫 낭패를 당할 뻔한 팀을 사지에서 구해낸 값진 홈런포였다.
삼성은 초반부터 낯선 볼로냐에 의외로 고전했다. 2회 선취점을 내줬고, 2-1로 앞선 7회초에 2-2 동점을 허용했다. 연장전 분위기까지 감돌던 8회말. 2사 2루서 상대는 4번타자 박석민을 고의4구로 걸렀다. 삼성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는 볼로냐로선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박석민이 4번타자인데다, 6회 좌익선상 2루타를 날리는 등 타격감이 좋아보였을 수 있다. 더군다나 마운드에는 좌완 오베르토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3·4위전)에서 0-0으로 팽팽하던 8회에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침몰시키는 결승 2루타를 때리며 한국야구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결정지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1라운드 일본전에서 1-2로 뒤진 8회 이시이 히로토시를 상대로 역전 결승 2점홈런을 터뜨리며 한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도 2-2로 맞선 8회에 이와세 히토키를 통타해 결승 2점홈런을 날리면서 대표팀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로 인도했다.
이승엽도, 삼성도, 한국의 팬들도 이런 역사를 알고 있기에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기분 좋은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승엽은 볼카운트 3B-2S에서 6구째를 받아쳐 오른쪽 펜스를 넘어가는 결승 3점홈런을 날려버렸다. 이 한방으로 삼성은 천신만고 끝에 5-2 승리를 거두고 비로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이승엽은 경기 후 홈런 상황에 대해 “1·2루였고 동점이었다. 원래 (그동안) 8회에 좋은 타구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좋은 타구가 나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앞에서 박석민을 거른 데 대해서는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올해 성적도 좋지 않았다”면서 “이 나이에 그런 자존심을 찾는다는 것은 고집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이승엽은 출국 전 “대만에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다”는 말을 결과로 보여줬다. 2회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때렸고, 6회에는 비록 상대 중견수의 기막힌 호수비에 걸렸지만 펜스를 직격할 뻔한 타구를 날렸다. 그리고 홈런포까지 터뜨리며 타선 불발로 고전하던 팀에 귀중한 첫 승을 안겼다. ‘역시 이승엽’, ‘약속의 8회’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 볼로냐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