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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갈색 개만 키우라는 법이 생겼는데…

입력 | 2013-11-16 03:00:00

◇갈색 아침/프랑크 파블로프 글·레오니트/시멜코프 그림·해바라기 프로젝트 엮음/46쪽·1만3000원·휴먼어린이




‘나’는 평온한 삶을 산다. 친구와 느긋하게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신문을 읽거나 축구 결승전 경기를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는 갈색만 길러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 고양이가 너무 많이 불어난 데다, 새끼를 조금만 낳고 먹이도 많이 먹지 않는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뒤이어 정부는 갈색이 아닌 개는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 법을 비판한 ‘거리 일보’는 폐간됐고, 도시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갈색 신문’만 남았다. 사람들은 문장마다 ‘갈색’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일에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여전히 카페에 갔고,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게 편안했다. 하지만 친구는 예전에 검은색 개를 키웠다는 이유로 잡혀갔고, 어느 이른 아침 누군가가 ‘나’의 집 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나’는 순응만을 요구하는 정부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2002년 프랑스 대선 때 극우파 후보인 장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까지 진출했을 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작품을 소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1유로짜리 12쪽 소책자가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고 나치의 전쟁 범죄를 용인한 르펜은 결국 낙마했다.

집단적인 침묵은 우리 삶에서 평화를 앗아갈 수 있다. 나치 치하에서 살았던 개신교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이런 상황을 나타낸다.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나를 위해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1998년 처음 출판된 이 작품은 25개국에서 출간됐다. 원작에는 그림이 없지만 러시아어판에 수록된 삽화를 가져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