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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막다 다쳐 ‘17년 의식불명’ 의경 끝내…

입력 | 2013-11-16 03:00:00

쇠파이프에 뒤통수 맞아 뇌출혈… 당시 전남경찰청 김인원 일경 숨져
16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 부친 “이런 비극 다시는 없어야…”




고 김인원 의경은 1996년 6월 전남지방경찰청 기동9중대 소속 의경으로 불법 집회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 후 17년간 투병하다 15일 숨을 거뒀다. 이성한 경찰청장(왼쪽)은 이날 오후 3시 김 의경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광주지방경찰청 제공

1996년 6월 14일 오후 5시 광주 조선대 정문 주변. 전남지방경찰청은 조선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형직사범대의 자매 결연식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전·의경들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후미를 지키던 기동9중대 의경 30여 명이 갑자기 튀어나온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남총련) 대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의경들을 향해 사방에서 돌이 날아왔고 쇠파이프와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했다. 이들 의경 대부분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 가운데 김인원 의경(당시 20세·일경·사진)은 왼쪽 발에 화염병을 맞은 뒤 이를 끄려는 순간 한 학생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다.

김 의경은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쇠파이프는 보호막이 없는 헬멧 아래 국방색 천 가리개를 강타했다. 이어 학생들은 의식을 잃은 김 의경을 끌고 가서 집단 구타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박모 씨(37·당시 상경)는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의경들이 학생들의 집단 공격을 받는 상황이어서 신병인 김 의경이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건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김 의경은 당시 여수대(현 전남대 여수캠퍼스) 해양생산과 1학년을 마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흰눈이 쏟아지던 1996년 1월 8일 의경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에 김 의경은 뇌출혈로 사경을 헤맸다. 사고 직후 조선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두 차례 뇌수술을 받는 등 총 9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1997년부터 광주보훈병원 62병동 11호실에 장기 입원하며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힘겹게 생명을 이어 갔다. 그사이 1998년 11월 16일 병상에 누운 채 수경으로 만기 전역했다.

아버지 김정재 씨(67)와 어머니 김복임 씨(64)는 15일 오전 4시 병원에서 둘째 아들 김 의경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 의경은 37세를 일기로 패혈증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올해 5월 옥조근정훈장을 받은 것도, 경찰의 날인 10월 21일 명예경찰 순경으로 임용된 사실도 모른 채….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아버지 김 씨는 “둘째 아들의 몸이 오래 누워 있으면서 괴사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웠다. 하지만 17년 5개월 동안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아 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우리 아들 같은 불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 국민도 친북 세력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유해는 16일 발인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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