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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청춘들이여 나무를 닮아라

입력 | 2013-11-16 03:00:00

‘나무가 청춘이다’의 고주환 작가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고주환 씨가 자신의 책 ‘나무가 청춘이다’를 들고 나무에 얽힌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나무는 인생을 나이테에 기록한다. 나무 에세이 ‘나무가 청춘이다’의 저자 고주환 씨(53)는 나무가 곧 인생이고 운명이었다. 그는 치악산 자락 복자기나무숲이 울창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황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6·25전쟁으로 피란 갔다가 돌아왔을 때 마을 집들의 나무문짝은 군인들이 땔감으로 쓰느라 모조리 떼어낸 뒤였다. 아버지는 나무문을 짜서 팔아 생계를 잇겠다며 목수로 변신했다.

“아버지가 쉰여덟에 낳은 막내라 목수 일을 하실 때 늘 곁에 붙어 함께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의 쓰임이나 성질에 익숙해졌어요. 아비 없이 살아갈 날이 많은 막내를 걱정하느라 엄한 모습도 보이셨지만 물참대(속이 빈 낙엽관목) 피리를 손수 만들어 건네주시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고 씨는 ‘민초 작가이자 토속식물의 어원 연구가’를 자처한다. 나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궁금해서 다방면으로 공부했다. 책에서는 고로쇠가 뼈에 이롭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됐다는 설을 반박한다. 오히려 튼튼한 고로쇠나무가 농사기구로 쓰여 왔기에 농사타령 ‘땅 고르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음운은 발음하기 쉬운 쪽으로 변하는데 발음이 쉬운 골리수가 발음하기 어려운 고로쇠로 변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손톱 밑에 때 안 묻은 학자들은 나무 이름을 우리 삶과 상충되게 짓는데 어원에 대한 공개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조 씨는 과거 사대부가 칭송하고 예술적 대상으로 삼았던 소나무 전나무보다 잡목들에 더 진한 애정을 갖는다. 민초의 아들이기에 삶 속에 쓰임이 많았던 싸리나무 물푸레나무를 가장 아낀다. 그는 “나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생활도구 놀이도구였는데 이젠 중장년층마저 나무에 대한 기억을 잊고 단절된 채 살아간다. 자라나는 후손들도 교과서에 실린 충절 기개 같은 나무의 박제된 이미지를 배우고 있는데 그들과 나무를 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은 3부작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1부 격인 ‘나무가 민중이다’(2011년)에선 궁핍한 부모 세대에게 도구로, 식량으로 힘이 돼 준 나무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청년이 돼 만난 나무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다. 다음 ‘나무가 인생이다’에선 단란한 가정을 꾸려 인생을 알아가며 만난 나무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고 씨는 경기 부천 공단의 금속 제조업체 사원으로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주중에는 금속을 만지고 주말에는 산천을 돌며 나무를 만나고 주말농장에서 농사도 짓는다. 나무와 더불어 살다 보니 생각도 나무와 닮아 있었다.

“나무가 그냥 있는 것처럼 보여도 뿌리와 줄기, 잎사귀는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툭 떨어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죠. 요즘 청춘이 어렵다며 성공한 어른들은 무작정 위로만 건네는데,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삶이 값어치가 있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