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이들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광부 7900여 명과 간호사 1만1100여 명이 낯설고 물선 독일로 향했다. 돈을 벌기 위해 지원한 사람 중에는 명문대 졸업자나 중퇴자도 많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광부 티를 내기 위해 연탄에 손을 비벼 거칠고 시커멓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찡하다.
그 시절 한국은 세계 120여 개국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 최하위권의 나라였다. 대학생의 위상은 높았지만 대학을 나와도 들어갈 기업이 드물었다. 지하 1000m의 이국땅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거나 병원에서 숨진 사람의 시신(屍身)을 닦는 힘든 일을 하겠다고 고학력자들까지 경쟁에 뛰어든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가난한 국가에 태어난 죄였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나라가 약하고 빈곤하면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1960년대 초반 80달러 안팎이었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8년 1000달러를 돌파했다. 연간 1억 달러를 밑돌던 수출은 파독 마지막 해인 1977년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60∼1970년대의 도약을 바탕으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 가운데 싱가포르 같은 소규모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의 문 앞까지 왔다. 정치적으로 굴곡도 있었지만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은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산업화 시대 독일 베트남 중동을 다녀온 젊은 한국인들은 이제 50∼70대가 됐다. 밑바닥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 초입까지 달려온 현대사를 머리뿐만 아니라 몸으로 아는 세대여서 개인과 함께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다.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난 퇴행적 좌경화를 막아온 주역들이기도 하다. 어두운 열정에 빠져 대한민국의 성취를 헐뜯는 사람들도 이들의 공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을 ‘위대한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한 달 뒤면 파독 광부 1진이 한국을 떠난 지 50년을 맞는다. 선배 세대가 가난의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광부 1진이 김포공항을 출발한 다음 달 21일을 전후해 박근혜 대통령이나 정홍원 총리가 파독 50년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그 시절 국민, 정부, 기업이 빈곤 탈출을 위해 고심하고 노력했던 그 정신만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드는 듯한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