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에밀리 E 디킨슨(1830∼1886)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화가 김점선 씨의 ‘속삭임’.
김 화백을 생각하면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고 장영희 씨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해인 수녀와 더불어 3총사처럼 지냈던 사이다. 장 씨는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사랑했다. 디킨슨 시를 강의노트에도, 직접 만든 머그잔에도 적어 넣었을 정도였고, 특히 ‘만약 내가…’를 아꼈다 한다. “내 옆자리에 남이 설 자리도 좀 내주고 넘어진 사람도 함께 손잡아 일으켜 우리 모두 함께 길을 걸어가고 함께 길을 찾아가기”를 꿈꾸던 자신의 마음을 대변했기 때문일까.
각박한 세상 속 한국인은 기댈 곳이 없나 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 삶 보고서’는 씁쓸하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란 질문에 한국은 34개국 중 꼴찌에서 3번째로 낮은 사회적 유대감을 드러냈다. ‘우리’라는 말을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입에 달고 사는 우리의 현주소다. 아등바등 달려와 먹고사는 문제는 웬만큼 해결했으나 속마음은 헛헛한 것인가.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자가 감정이입할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위험에 빠진 주인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인간의 위대한 본성인 공감 능력 때문이란 것이다. 요즘 태풍 피해를 본 필리핀 돕기 운동이 한창이다. 남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는 것, 지친 새를 다시 둥지에 보내주는 것은 우리 삶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이다. 나의 숨은 상처를 누군가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나는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인가 곰곰 자문해 봐야겠다. 먼 곳도 좋지만 이왕이면 가까운 곳도 함께.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