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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현장 이슈]정치권 진흙탕 싸움된 강남 판자촌 ‘구룡마을’

입력 | 2013-11-18 03:00:00

개발일정 최소 1년 지연될듯




비닐하우스와 판잣집이 널려 있어 폐허처럼 보이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방식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새누리당이 강하게 대립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5일 오전 서울 강남의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른 키 정도 되는 집의 슬레이트 지붕과 알루미늄 문은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비닐로 꽁꽁 싸매 놓았다. 주민들은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허술한 판자 건물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에 30년간 거주했다는 주민 A 씨는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을 내야 죽기 전에라도 살 만한 집에서 살아보지 않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룡마을 개발사업이 서울시와 강남구·새누리당의 끝 모를 정치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최소한 1년 이상 개발 일정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민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구룡마을에 대해 감사청구만 3건이 제기됐다. 지난달 21일 서울시가 “개발 과정의 특혜 논란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고 구룡마을 토지주와 거주민들은 지난달 30일 강남구청에 대해 국민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에 강남구는 1일 서울시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며 맞불을 놨다. 새누리당도 가세했다. 지난달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구룡마을 문제를 제기했고, 검찰 고발과 함께 국정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나서는 등 박원순 서울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개발방식을 둘러싼 갈등이다. 20년 넘게 판자촌으로 방치됐던 구룡마을은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전 시장이 2011년 4월 시가 주도하는 100% 수용방식의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발표하며 개발 계획이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이 수용방식에 환지방식을 일부 적용하겠다고 계획을 바꿨다. 환지방식은 토지수용 후 보상금을 주는 대신 조성된 사업용지 내에 일부 토지로 바꿔주고 본인 뜻에 따라 개발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시의 계획대로라면 기존 토지주들은 전체 용지 28만6929m²의 18%인 5만여 m²를 받게 된다. 토지주들은 이 땅을 이용해 민영개발을 하고 나머지 82%는 시가 공영개발을 하는 것이다. 시는 환지방식을 도입하면 4000억 원가량 개발비가 덜 들고,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를 낮춰 현 거주민들의 100% 재정착까지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남구가 서울시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개발은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시행하지만 최종 계획 승인 권한은 강남구청장에게 있다. 강남구는 서울시에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강남구에 따르면 구룡마을 토지주 109명 중 990m² 이상 보유자는 총 44명으로 이 중 3300m² 이상 대규모 용지를 보유한 사람이 5명이다. 인근 개포주공아파트 땅값이 3.3m²당 4000만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아파트 건축이 가능한 환지를 받는 토지주는 상당한 개발이익을 거둘 수 있다.

정치권까지 개입해 갈등이 깊어지면서 개발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게 됐다. 당초 시는 이달까지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내년 말 착공해 2016년까지 완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기간과 내년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전체 계획이 최소 1년 이상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재선을 겨냥해 박 시장과 일부러 대립각을 세우고, 새누리당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신 구청장은 “공영개발의 순수한 의도를 흠집내려는 술수”라고 맞서고 있다.

주민 간 반목도 커지고 있다. 대토지주와 대토지주로부터 지분 쪼개기를 통해 명의신탁을 받은 사람들은 개발이익을 더 기대할 수 있는 환지방식을, 지분이 없는 거주민 등은 100% 공영개발을 선호한다. 주민 B 씨는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워도 서로 가족처럼 도우며 지내던 주민들인데 요즘은 어느 편인지 몰라 말을 걸기도 무섭다”며 “정치권의 의견차가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이서현 기자  

▼ 1970년대 재개발 철거민 이주… 무허가건물 400여채 ▼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산과 대모산 자락에 자리한 구룡마을은 1970년대 대규모 도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철거민들이 하나 둘씩 이주해 마을을 형성했다. 현재 무허가 건물 400여 채에 1300여 가구 2500여 명이 모여 산다.

도곡동과 가깝고, 양재대로를 사이에 두고 개포주공단지와 마주보고 있어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며 개발 압력을 받아왔다. 이 마을은 대부분 사유지로, 도시개발 대상인 28만6929m² 중 90%에 이르는 25만8650m²가 개인 소유다. 정모 씨가 40%가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민영개발이 이뤄지면 구룡마을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가구당 한 채씩 66m² 규모의 아파트를 주겠다며 그 약속으로 거주민들에게 땅을 33m²씩 나눠줘 많은 거주민들이 토지소유주가 됐다.

무허가 판자촌이라 전기, 상하수도 등 주요 기반시설이 없다. ‘사유지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2011년 5월까지 전입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4월 총선에서 처음 투표에 참여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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