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에 ‘생명의 손길’을]<1>의료비 때문에 가정 파탄
11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3층 인공투석실에서 A 씨가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A 씨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쌓여가는 병원비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A 씨는 수술비며 입원비, 약값 등 750여만 원이 밀렸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여보, 내가 누구야? 내 이름이 뭐야? 여보, 여보.”
“….”
남편은 17년째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번 할 때마다 4시간 정도 혈액 투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비용은 한 번에 15만 원 정도.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 지원해 줘 그나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부담해야 할 병원비. 지난달 중순 병원에 들어온 후 수술비며 입원비, 약값 등 750여만 원이 밀렸다. 언제 갚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병원에 사정을 얘기해 그나마 입원을 연장했지만 언제 병실을 비워줘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퇴원을 해도 뾰족한 대안은 없다. 사설 요양원에 가야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A 씨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때 치료를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을 허무하게 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A 씨는 “(의식도 없는 남편에게) 가족들을 위해 조용히 가시라고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속삭였다. (남편이)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었다”며 흐느껴 울었다.
A 씨는 남편, 아들(36)과 함께 50m²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산다. 아들은 발달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A 씨는 파출부로 일했지만 하루 종일 남편의 병 수발을 드느라 일도 그만뒀다. 그나마 아들이 복지관에서 일을 하며 매달 벌어오는 100만 원 남짓한 돈이 이들의 유일한 소득. 이 돈으로 생활비며 대출금, 관리비, 약값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한 푼도 없다. 매달 20만∼30만 원 적자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도 비슷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2011년 우리나라 미충족 의료발생률은 18.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미충족 의료발생률은 의료 욕구는 있는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비율이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대비 가계직접부담 비중은 2011년 현재 35.2%. 2001년(34.9%)보다도 높다. 10년간 가계의료비 부담이 답보 상태다. 이 수치는 OECD 24개국 평균인 19.6%의 2배에 가깝다. 멕시코와 칠레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노력에도 직접 부담이 높은 이유는 뭘까.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높기 때문이다. 비급여 본인부담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급병실 이용, 선택진료, 치료재료 사용액 등이다. 이 같은 비급여 본인부담이 전반적인 건강보험 보장률 향상 속도보다 더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 설계 당시의 낮은 보험료 부담 수준 또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걸림돌이다. 실제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2010년 16.0%로 2006년(13.3%), 2008년(15.2%)보다 높다. 경제적 이유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공동모금회는 정부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와 중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청 창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했다. 문의는 공동모금회 각 지회, 국민건강보험공단도 가능하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