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5>두산 KS준우승 이끈 김진욱 감독
올 시즌 김 감독의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 먼저 2패를 당한 뒤 3연승으로 기적같이 회생한 뒤 라이벌 LG까지 제쳤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어도 ‘가을 잔치’의 진한 감동을 전했다.
김 감독은 선전의 비결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고 운장(運將)’이라는 일부의 폄훼가 달갑지는 않은 듯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김 감독은 무한경쟁을 강조했다. “1군에 오면 26명 전원이 주전입니다. 후보가 따로 없어요. 누구나 준비하고 노력하면 기회를 줍니다.” 두산의 대타 작전과 깜짝 선수 기용이 번번이 들어맞은 데는 평소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른바 ‘화수분 야구’다.
고참이나 거물급 스타들에게 이런 경쟁이 달가울 리 없다. 불만이 심해지면 태업과 같은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 번 세운 원칙을 밀어붙였다. “선수들끼리 인정하는 공정한 경쟁이 중요합니다. 올 시즌 두산의 성적도 거기에서 나온 겁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계속 경쟁하는 걸 느꼈어요.”
김 감독에게 “당신의 리더십은 뭐냐”고 물었더니 기러기 얘기를 꺼냈다. “기러기 떼가 몇만 km를 이동할 때 리더는 맨 앞에 서는 게 아니랍니다. 중간에서 컨트롤하면서 힘들고 지쳐 낙오하려는 동료들을 다독거려 끌고 가는 역할을 하죠. 그래도 도저히 못 간다고 판단이 서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거죠. 감독 역할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김 감독의 이력도 철새를 연상시킨다. 경북 영천의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해 춘천중(강원)을 거쳐 천안 북일고(충남) 창단 멤버로 입단하더니 부산 동아대를 졸업했다. “전국구였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한술 더 뜬다. “국내 은퇴는 쌍방울(전북 전주)에서 했고 대만까지 가서 6개월 뛰었어요.” 김 감독의 성장 배경은 지연과 학연을 강하게 따지는 국내 프로야구의 질서에서 자유롭다.
2007년 두산 코치를 거쳐 지난해 1군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약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스태프들과 자주 커피 브레이크를 가졌다. “코치뿐 아니라 트레이너에게도 97%의 권한을 준다고 말했어요. 감독은 3%만 갖는 거죠. 그 대신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고 했습니다.”
현역 시절 선동렬 KIA 감독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연장 15회 완투 무승부로 화제를 뿌렸던 김 감독은 은퇴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고 몸부림쳤다.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 2개씩 달고 죽기 직전까지 뛰었어요. 팔과 무릎이 다 끝난 상황이었는데…. 몸에 무리를 줘 오히려 망가졌죠.”
김 감독이 불쑥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복기하고 싶지 않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왜 총력전을 펼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꺼냈을 때였다. “나라고 왜 그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투수를 ‘몰빵’해서 이길 수 있느냐는 확신이 없었죠. 할 말은 참 많은데….”
그는 올 시즌 3차례나 사표를 내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시즌 중반 투수진이 무너져 6위까지 추락했을 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포스트시즌 들어 넥센, LG에 패했다면 아마 관뒀을 겁니다.”
좋은 커피를 얻으려면 생두와 로스팅(볶기), 브루잉(추출)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직은 2년 차 초보 사령탑인 김진욱 감독. 자기 야구만의 향기와 색깔을 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두산의 내년 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