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체 점검만으로 날아다니는 헬기… 고층 도시 불안

입력 | 2013-11-18 03:00:00

[‘삼성동 아이파크’ 헬기 충돌]
정부-서울시 뒤늦게 안전점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민간 헬기가 도심 고층 빌딩에 충돌하는 초유의 사고가 일어나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17일 헬기 안전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나섰다. 본보가 점검한 결과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초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지만 민간 헬기에 대한 안전 감독은 허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에 따르면 군과 경찰, 소방방재청 등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등록한 헬기는 109대로 9년 전인 2004년(68기)보다 62.4% 급증했다. 이 중 대한항공 삼성테크윈 등이 보유한 운송사업용 헬기(에어택시) 18대와 세진항공 등이 항공기사용사업(훈련 광고 등의 목적으로 대여)에 이용하는 74대를 제외한 순수 자가용 헬기는 LG전자 2대를 포함해 총 17대다. 한서대(4대) 포스코 현대자동차(이상 2대) KBS MBC 재단법인세계평화통일 삼성병원 SK텔레콤 대우조선해양 한화케미칼(이상 1대) 등이 자가용 헬기를 갖고 있다.

서울 상공 중 청와대를 중심으로 반경 7.2km는 대통령 전용 헬기 등 일부 군용기만 비행할 수 있는 비행금지구역이다. 여기에는 4대문 안 지역 대부분이 포함된다. 하지만 고층빌딩이 몰려 있는 강남 서초 송파구와 영등포구,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주변과 한강 유역은 이륙 1시간 전에 공항과 수도방위사령부에 비행경로와 출발 및 도착 시간 등을 알리고 허가를 받으면 비행할 수 있다.

공항에 제출하는 계획서에는 가시거리 등 기상 조건은 적지 않아도 된다. 경유지와 도착지 등 운항 구간 전체의 기상을 따져 보고 비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종사의 몫이라는 뜻이다.

가시거리와 풍속 등 운항 조건에 따른 운항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해놓은 정부 차원의 운항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자가용 헬기는 운항 규정을 헬기 보유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도록 해놓았으며 이를 항공청에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항공법 116조(운항규정)에 따르면 운송사업 및 항공기사용사업용 민간 헬기는 운항 규정을 지방항공청에 등록해야 하지만 자가용 헬기는 자체 운항 규정을 둘 뿐 이를 항공청에 등록할 의무가 없다.

LG전자의 경우 가시거리가 1.6km 이상일 때 이륙하도록 자체 헬기 운항 규정에 정해뒀다. 하지만 이번 사고기가 이륙했을 당시 출발지(김포공항)의 가시거리는 이보다 짧은 1.1km였고 목적지(잠실)로부터 8km 떨어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의 가시거리는 800m였다. 규정대로라면 이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가 공항에 ‘특별시계비행’(계기판 없이 눈으로 직접 보고 하는 비행)을 요구하면 기상과 무관하게 이륙할 수 있다. LG전자 측은 “사고기 조종사가 이륙 전 공항에 특별시계비행을 요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헬기가 시속 200km로 운항할 경우 1.6km를 나는 데 3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민간 헬기 가운데 도입한 지 25년을 넘긴 노후 헬기는 40대(36.7%)지만 점검 기준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민간 헬기는 연 1회 각 지방항공청으로부터 비행 성능과 소음 기준 등을 점검받아 ‘감항성’(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자가용 헬기 보유업체 대부분은 이 검사를 자체적으로 시행한 뒤 항공청에 보고만 하고 있다. 서울지방항공청 관계자는 “LG전자 등 자가용 헬기 보유 업체 대부분은 10년 이상 헬기를 보유하며 정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지방청이 직접 기체 안전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자체 검사 내용을 보고받는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지상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이 16곳이다. 2015년 송파구에 지상 123층 높이의 ‘롯데슈퍼타워’가 들어서는 등 초고층 건물이 계속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16일과 같은 참사의 위험은 상존한다.

하지만 활주로 유도등과 관제탑 등이 설치된 공항과 달리 초고층 건물에 대한 항공 안전 대책은 빌딩 꼭대기에 다는 ‘항공장애등’(일명 깜빡이)이 전부다. 또한 고층빌딩 밀집 지역은 바람이 불규칙하게 불어 비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서울시내 초고층 빌딩 16곳 중 12곳은 거주민이 집중된 공동주택이어서 이번과 같은 항공기 충돌 사고가 일어날 경우 심각한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태훈·조종엽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