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원 씨는 여수대 해양생산학과 1학년을 마치고 1996년 1월 의경에 자원입대했다. 그해 6월 전남지방경찰청은 ‘조선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간 자매결연식’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고 광주 조선대에 전경과 의경을 투입했다. 김 씨는 전남지방경찰청 기동9중대 3소대 소속이었다. 학생 쪽에서 날아온 화염병이 김 씨의 왼쪽 다리 앞에 떨어졌다. 불을 끄려고 온 신경을 쏟을 때 누군가가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내리쳤다. 의식을 잃은 김 씨는 학생들에게 끌려가 한참을 짓밟힌 뒤에야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 씨는 아홉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다. 뇌사 판정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어렵사리 생명을 유지하던 그가 15일 새벽 패혈증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병상에 누운 지 17년 5개월 만이었다. 김 씨의 부친은 영정을 어루만지며 “17년 동안 곁에 있어줘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정 속의 김 씨는 경찰복을 입은 늠름한 20세 청년이었다. 식물인간으로 반생(半生)을 보냈던 그는 경찰의 날인 지난달 21일 명예 순경으로 임용됐다.
빈소를 찾은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법질서 확립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민주화를 촉구했던 시위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일종의 자구책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민주 정부가 들어선 지 20년 넘게 경과한 지금, 폭력적인 시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국민은 사적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국민이 공권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다. 김 의경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