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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고도보다 낮게 비행… 사고순간까지 위급신호 안보내

입력 | 2013-11-18 03:00:00

[‘삼성동 아이파크’ 헬기 충돌]
안갯속 사고… 원인도 오리무중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에 충돌한 LG전자 헬기는 목적지인 잠실헬기장을 불과 1.2km 남기고 아이파크 아파트 쪽으로 기수를 돌린 후, 정상 고도보다 낮은 상태로 비행했다. 여기에 헬기 내 안전장치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고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의문점이 많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의문점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본다.

○ 목적지 1km 남기고 갑자기 우회

조종사들이 목적지를 앞두고 헬기를 우회시킨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성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기장 출신인 정윤식 중원대 교수(항공운항학)는 “사고기가 날씨가 나빠 잠실에 착륙할 수 없게 되자 김포공항으로 돌아가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북쪽으로 선회할 경우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방향을 틀다 아이파크 아파트 북서쪽에 부딪쳤다는 관측이다.

이번 사고기는 기계에 의존한 ‘계기 비행’이 아니라 조종사가 눈으로 조종하는 ‘특별 시계 비행’ 상태였다. 착각이든, 긴급 상황이 발생해 목적지를 남기고 고층빌딩 쪽으로 우회했든 조종사들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헬기 관계자는 “김포공항에서 잠실헬기장까지 운항하는 경로는 민간 헬기들이 자주 이동하는 한강 위 비행 경로”라며 “사고 헬기가 통상적인 경우라면 우회하지 않는 쪽으로 비행한 것으로 볼 때 기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측은 “사고기가 아이파크 쪽으로 우회한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사고 조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사고기 블랙박스를 수거해 정확한 비행 경로와 조종실 대화 내용, 사고 당시 기체의 고도와 속도 등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블랙박스 분석에는 통상 6개월 이상 걸린다.

○ 낮은 고도, 경고장치 작동했나

사고기가 낮은 고도에서 충돌한 것도 미스터리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헬기는 수평거리 600m 범위 안에 있는 가장 높은 장애물보다 300m 이상 높게 날아야 한다. 사고기 조종사들 역시 이 같은 규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사고기는 고도 100m 이하인 아이파크 아파트에 충돌했다.

정성남 건국대 교수(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는 “유리로 된 아파트 외벽에 주변 풍광이 비치면 하늘에서 볼 때 물 위로 착각할 수 있다”며 “안개 등의 현장 기상 악화와 착시 현상이 겹치며 낮은 고도를 인지하지 못해 사고가 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기의 경우 항공기가 일정 고도 밑으로 내려가면 경고음을 내는 ‘지상접근경고장치(GPWS·Ground Proximity Warning System)’가 장착돼 있는데도 사고가 났다. 이와 관련해서는 GPW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조종사들이 경고음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 모두 배제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GPWS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밝힐 계획이다.

○ 마지막까지 ‘SOS’ 교신은 없었다

이번 사고기 조종사들은 사고 순간까지도 위급 교신을 보내지 않았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사고가 급작스레 벌어졌을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통상 항공기 조종사들은 위험에 처할 경우 위험 신호를 외부에 보낸다.

국토부와 군에 따르면 사고기 조종사들은 김포공항에서 이륙할 당시 김포공항 관제탑과 교신했고, 이후 한강 수계에 진입해 관제 주체가 군으로 바뀌면서 공군과 교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관제 주체가 바뀌는 ‘주파수 교체’ 교신을 마지막으로 사고가 날 때까지 사고기와 외부의 교신이 전혀 없었다”며 돌발 사고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 안갯속 운항 논란도

안개가 낀 상황에서 운항을 시도한 점도 논란거리다. 이날 헬기가 이륙한 김포공항은 사고기가 이륙한 16일 오전 8시 46분에야 ‘저시정경보’가 해제됐다. 사고 지점인 강남구 삼성동 인근에는 기상관측소가 없지만 경기 성남 공군기지의 경우 오전 9시 기준 안개가 끼어 있어서 가시거리가 800m 정도였다. 박인규 기장의 아들도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가 ‘안개가 많이 끼어 잠실 대신 김포에서 출발하는 게 어떠냐’고 회사와 상의했다”고 말했다.

왼쪽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헬 기 충돌사고’ 관련 제기되는 의문점들을 다룬 채널A 리포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LG전자가 안개가 낀 상황에서 무리하게 헬기를 띄웠다”며 “사고 헬기에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탑승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박 기장이 출발 한 시간 전에 ‘시정이 좋아져 잠실을 경유할 수 있다’고 알려와 예정대로 헬기 탑승을 결정했다”며 “구 부회장이 해당 헬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LG전자에 따르면 구 부회장은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다른 헬기에 탑승해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한국여자야구대회 관람을 검토했지만 사고 전에 헬기 사용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명 jmpark@donga.com·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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