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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시장형 실거래가제, 대형병원만 배불려”

입력 | 2013-11-19 03:00:00

제약업계, 정부 재시행 움직임에 제도폐지 강력 촉구




“약값 인하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크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

“재정에 별로 도움도 안 되면서 제약업체를 죽여 일부 대형병원에 특혜를 주자는 건가.”(제약업체 관계자)

‘시장형 실거래가제’라는 약가(藥價) 제도와 관련해 정부와 제약업계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제도는 약값을 낮추고 건강보험 재정을 아낀다는 취지로 병원이 제약업체로부터 받던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기 위해 도입됐다.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16개월간 시행됐다가 이후 다른 약가 인하 정책과 겹치면서 제약업체의 피해가 커진다는 이유로 2년간 시행이 유예됐다.

내년 1월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재시행 여부가 이르면 이달 말 결정될 예정이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 제약업체 “대형병원 배불리는 제도”

제약업계는 보건당국에 ‘제도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다수의 제약회사를 희생해 ‘갑(甲)’인 대형병원에 혜택을 주는 제도로, 건보 재정 절감 효과도 작다는 주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시장형 실거래가제 시행 시기 중 병원, 약국 등이 받은 인센티브는 2339억 원이었다. 반면 이 제도로 약값을 내려 아낀 건보 재정은 700억∼1800억 원 수준에 그쳤다. 제도 시행 이전부터 약을 싸게 공급받던 대형병원들이 약값을 깎았다며 인센티브를 받아갔기 때문이다.

또 지급된 인센티브의 91.7%(2143억 원)는 종합병원 이상 대형병원에 집중됐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은 120억 원이 넘는 인센티브를 받았다. 반면 일반병원(6.4%) 의원(1.7%) 약국(0.2%) 등이 가져간 돈은 미미했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제약사는 대형병원의 약값 인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을(乙)”이라며 “이 제도를 다시 시행하면 결국 ‘슈퍼 갑’인 일부 대형병원들만 득을 본다”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대표적인 ‘창조경제’ 업종으로 꼽히는 제약산업 발전에도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약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어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다.

○ 건보, “약품거래 투명성 확보에 도움”

보건당국도 제약업체들이 제기하는 일부 문제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의약품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제약업체의 리베이트를 줄일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에 섣불리 폐지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병원, 약국은 실제 약품 구매가가 아닌 기준가(상한가)로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장형’ 제도가 정착되면 실거래가를 파악해 재정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관이 공석인 보건복지부는 아직 이 사안에 대해 결론을 못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각각 장단점이 있는 만큼 새 장관의 판단이 제도 재시행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

병원이 제약업체에서 구입하는 약값을 깎으면 정부가 깎은 금액의 70%를 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원에 인센티브로 주는 제도. 예를 들어 건강보험 등재 약값이 1000원인 약을 병원이 제약사에서 900원에 사면 정부는 깎은 금액 100원의 70%인 70원을 병원에 준다. ‘저가 구매 인센티브제’라고도 불린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