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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문태준]‘이제 다 내려놓고 단순하게 살고 싶네’

입력 | 2013-11-19 03:00:00

스님들 동안거 소식 들으니 올해 초 뼈 시린 백담계곡서 용맹정진하던 모습 떠올라
‘콩댐을 한 장판방 머리맡엔 목침 하나…’
정희성 시인의 ‘한거’ 읊조리며 이 매운 겨울 지내도 좋으리




문태준 시인

“둘이 보고 서로 마음이 맞아/밤이 깊은 줄을 알지 못했네/한가로이 눈길 속에 주고받은 말/물과 같이 두 마음에 서로 비치네.”

이 시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지은 것이다. 이 시에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으며 깊은 밤 눈길을 걸어가는 스님 두 분이 등장한다. 날은 차고 달은 환하게 떴을 것이다. 이 시에서의 두 분 스님은 만해 스님과 영호 스님이다. 영호 스님은 만해 스님의 한시에 자주 등장하는 박한영(朴漢永) 스님이다.

만해 스님과 영호 스님의 깊은 교분의 조화를 보여주는 이 시의 네 번째 구는 참으로 신비한 묘미가 있다. 두 마음이 호응하여 마치 맑은 물의 수면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속기(俗氣)가 전혀 없으니 수행자의 깨끗하고 굳은 성품이 풍겨난다. 박한영 스님의 아호인 ‘영호(映湖)’는 호수의 맑은 물에 무언가가 아주 잘 어리어 비친다는 뜻이니, 은근히 스님의 아호의 의미를 재치 있게 빌려 시를 지었다고 하겠다.

17일부터 전국 100여 개 선원에는 2100여 명의 스님들이 방부를 들이고 동안거 정진에 들어갔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동안거를 앞두고 내린 법어에서 “금풍(金風)이 땅을 쓸어버리니 산과 들이 야윔이요/달이 못에 떨어지니 물 밑은 고요함이라/옥을 굴리고 기틀을 굴리니 ‘하하!’라고 웃는지라/직하(直下)에 서로 만나니 서로 알지 못함이로다”라고 읊고, “모든 분별심이 재(灰)가 되어서, 아무리 불을 갖다 대어도 탈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생사를 떼어놓고 부단히 참구하라”고 당부했다.

만해 스님의 시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를 읽으면서 물의 맑음과 적정(寂靜)에 대해 생각했다. 대상이 온전히 수면 위에 비치는 그 물의 맑음과 달이 못에 떨어져도 물은 조용하고 잠잠해 고요를 잃지 않는 그 적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맑음은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이다. 가려내고 선택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기고 순한 것이 서로 다투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고 했으니, 맑음은 내게 맞는 것과 내게 거슬리는 것이 서로 다투지 않는 상태이다. 맑은 상태에서는 마음에 병이 없다. 그러므로 ‘신심명’에서도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환하게 명백하다”라고 이른 것이다. 적정은 무엇인가. 무심을 얻는 것이다. 무심을 얻은 사람은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이라고 했다. 이러할진대, 이 맑음과 적정이 실은 깨달음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속간에 살면서 스님들의 동안거 소식을 들으니 올해 초 백담사를 찾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눈 덮인 계곡과 흰 반석, 그리고 매서운 바람이 움직여 가는 뼈 시린 추위를 보았다. 그 겨울의 백담계곡 안 무금선원에서 스님들은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 다시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 기온이 뚝 떨어지니 백담사 생각이 한 번 더 절로 나는 것이다.

“이제 다 내려놓고/단순하게 살고 싶네/콩댐을 한 장판방/머리맡엔 목침 하나/몸 이긴 마음이/어디 있을까/창호지에 들이치는/싸락눈 소리”

이 시는 정희성 시인의 시 ‘한거(寒居)’이다. ‘콩댐’은 불린 콩을 갈아 들기름 따위에 섞어 장판에 바른 것이다. 콩댐을 한 방이니 화려하지 않고 다소 누추한 처소이다. 이 방에 목침이 하나 조용하게 있다. ‘목침’은 한거(閑居)하는 정신의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근래에 이 시를 접하고서 나는 이 시를 낮게 읊조리며 겨울을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에 의지하면 얼음이 얼고 눈이 쏟아지는 날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교의 경전 ‘아함경’에는 수행하는 이의 거룩한 모습을 공작새의 아홉 가지 덕에 빗대고 있다. 얼굴이 단정하고, 목소리가 맑으며, 걸음걸이가 조용하고, 때를 알아 행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만족을 알고, 흐트러짐이 없고, 잠이 적고, 욕심이 적고 은혜를 갚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동안거 석 달 동안 이 조목들을 계행(戒行)의 조목들로 삼아 살아보면 어떨까 또 생각해 보았다. 물의 맑음과 적정을 우리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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