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헬기 시뮬레이터로 헬기 충돌사고 재현해보니
18일 강원 원주시 산림청 헬기 시뮬레이터실에서 동아일보가 산림청에 의뢰해 진행한 안개 상황 시 가시거리와 관련한 모의실험 장면. 가시거리 300m로 안개 농도를 높이자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던 지상의 모습이 사라졌다. 왼쪽이 권준 산림청 조종사, 오른쪽이 본보 김수연 기자. 원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다행히 이는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18일 강원 원주시 산림청 헬기 시뮬레이터실. 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팀은 이곳에서 산림청 헬기 조종사와 함께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에서 벌어진 헬기 사고의 상황을 모의 주행으로 재현해 봤다.
○ “잠실에 항법 장비 없어 계기 비행 불가능”
사고가 일어난 16일 오전 9시 서울 송월동 기상관측소의 가시거리는 안개가 끼어 1.1km였다. 권 조종사가 시뮬레이터의 안개를 이같이 설정하자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지상의 모습이 사라지고 창밖이 흐릿해졌다. 권 조종사는 “사고 당시에도 이 정도였다면 비행이 꽤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시계비행이 어렵다면 계기비행을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묻자 권 조종사는 “목적지가 잠실까지였다면 계기비행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눈으로 지상의 상태를 파악하며 비행하는 시계비행이 어려운 경우, 조종사는 계기비행을 한다. 고도, 속도, 항체각도 등이 표시된 계기반만 보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계기비행을 하려면 목적지에 항공보안시설(항법장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 헬기의 1차 목적지였던 잠실 헬기장엔 항법장비가 없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일단 이륙했다면 계속 시계비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고도를 낮춘 뒤 안개를 걷어내자 바로 앞이 산이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장애물에 ‘쾅’ 하고 부딪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인 셈이다.
○ 헬기 조종사들 “강남 고층 건물이 가장 까다로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군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헬기를 실제로 조종하는 조종사는 공공기관 155명, 민간 136명 등 총 291명이다. 헬기 조종 자격은 군에서만 취득할 수 있다. 취재팀은 18일 경찰청, 산림청, 대기업 2곳, 항공기사용사업(훈련 광고 등의 목적으로 대여) 업체 2곳에서 근무 중인 현직 헬기 조종사 6명을 인터뷰했다.
바람이 고층 빌딩을 만나면 벽을 타고 사방으로 흐르면서 풍속이 빨라지는 ‘돌풍(와류)’ 현상도 조종사들에게는 부담스럽다. 빌딩 옥상에 설치된 이착륙장을 이용할 때는 돌풍이 비행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A 기업에서 자가용 헬기를 조종하는 B 씨는 “옥상 이착륙장(헬리패드)의 기본 용도는 화재 시 비상대피용”이라고 말했다. 몇몇 조종사들은 “소속 회사나 기관의 고위층이 비행을 요구할 경우 기상 등을 이유로 거절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비행 실력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평가로 돌아오기 때문.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헬기 충돌 시뮬레이션’ 동영상이 담긴 채널A 리포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원주=김수연 sykim@donga.com / 조건희·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