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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디플레 적색 경고등

입력 | 2013-11-20 03:00:00

가계 빚 확대 → 이자부담 증가 → 소비 지출 감소 → 경제 활력 상실




직장인 최모 씨(35)는 약 400만 원의 월급 중 150만 원을 은행 빚 갚는 데 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여윳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도 하면서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전세금은 치솟고, 그에 맞춰 은행 대출금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최 씨는 우선 빚부터 빨리 갚아버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부채 상환에 쓰는데도 빚이 여간해서 잘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생활에 필수적인 지출 외의 소비나 저축은 나에겐 사치로 느껴진 지 오래”라며 한숨을 쉬었다.

좀처럼 탈출할 수 없는 ‘빚의 굴레’가 가정 경제에 주름살을 더하고 있다. 소득이 늘어도 대부분 빚을 갚는 데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도 빚의 규모는 계속 늘기만 한다. 또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느끼는 가구가 많다 보니 정상적인 소비지출이 어려워져 국가 경제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은 19일 전국 2만 가구의 가계수지를 표본 조사한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가구의 자산과 부채, 소득, 지출 등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살림살이는 1년 전보다도 더 팍팍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 소득이 부채 증가 속도 못 따라가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전형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에 돌입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가구 평균 소득은 4475만 원으로 2011년에 비해 5.7% 증가했다. 하지만 식료품 주거·교육비 등 일반적인 소비지출액은 같은 기간 0.2% 늘어나는 데 그쳐 사실상 정체 상태를 보였다.

소득에 비해 소비 증가율이 이처럼 미미한 것은 막대한 부채 상환 부담 때문이다. 올 3월 현재 가구당 평균 부채는 5818만 원으로 1년 전(5450만 원)에 비해 6.8%나 급증했다. 덩달아 이자도 불어났다. 이자 비용과 연금 및 보험료, 세금 등 비(非)소비지출은 9.6%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 증가율이 부채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계의 재무건전성은 더욱 악화됐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작년 3월 106%에서 올해 3월 현재 108.8%로 올라갔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도 같은 기간 17.2%에서 19.5%로 상승했다. 이제 100만 원을 벌면 20만 원을 온전히 빚 갚는 데 쓴다는 뜻이다. ○ 저소득층 부채 증가율 심각

소득계층별 양극화 현상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평균 자산은 7억5438만 원이었고 이들의 자산 총합은 전체 가구 자산의 46.3%를 차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의 자산 점유율은 6.2%밖에 되지 않았다.

부채도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1분위 가구의 빚은 올 3월 현재 1246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4.6% 급증했지만 상위 20% 가구의 빚은 1억3721만 원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2만 원 줄었다. 저소득층은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대부분 고소득층이 지고 있기 때문에 큰 위기로 번질 확률이 낮다”고 설명해 왔다.

국민 6명 중 1명꼴인 16.5%는 지난해 소득이 빈곤선인 1068만 원(중위소득의 50%)을 넘지 못해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국민의 21.4%는 최근 2년 동안 빈곤을 잠시나마 경험해 봤고 2년 내내 빈곤층에 머무른 비율도 11%에 달했다.

:: 부채 디플레이션 ::

가계 빚이 늘거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소비가 줄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현상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