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근교 알라마르 협동농장 가보니
알라마르 협동농장의 미겔 로페스 대표가 농장에서 사육하는 지렁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6일(현지 시간) 쿠바 아바나 근교 알라마르 협동농장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지렁이 사육장. 책임자인 미겔 로페스 대표(63)는 사육장의 흙을 한 움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지렁이 몇 마리가 꿈틀댔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지렁이는 연간 약 4t 정도로, 일부는 알라마르 협동농장에서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는 아바나의 다른 도시농장에 보낸다. 최근에는 공급 물량이 달려 한쪽에서는 사육장을 확장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장의 다른 한쪽에 설치한 축사에서는 소 10여 마리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이 소들이 배출하는 분뇨 역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쿠바 아바나 근교의 알라마르 협동농장. 농약을 뿌리는 대신 농작물을 심은 밭 주위에 강렬한 색깔의 식물을 심어 해충의 피해를 줄이고 있다.
알라마르는 1997년 문을 연 쿠바에서 가장 오래 된 유기농 협동농장이다. 10만 m² 터에서 150여 명의 조합원이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채소 등 유기농 작물을 재배한다. 쿠바에서 많이 생산되는 사탕수수를 비롯해 망고, 상추 등 현지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다양한 농산물을 주위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농약을 대체하는 다양한 재배기술도 이곳의 특징이다. 농장에 넓게 펼쳐진 밭 주변에는 빨강, 노랑 등 화려한 색깔의 식물을 심어놓았다. 이는 해충을 막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농장의 한 조합원은 “화려한 색상이 해충의 시선을 교란시켜 작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이처럼 유기농업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옛 소련의 붕괴가 계기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들에 각종 물자를 공급하며 체제를 지탱해왔던 소련이 무너진 뒤로 쿠바는 한동안 자급자족의 길을 걸어야 했다. 농작물 생산에 필요한 화학비료, 농약 역시 부족해졌다. 이 과정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유기농업인 셈이다.
농림부에서 일하던 로페스 대표는 협동농장 조성 초기부터 이곳에서 활동하며 유기농업 발전에 기여해왔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쿠바는 국제사회에서 유기농업의 본산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나고 좋은 먹거리를 찾는 이들도 증가하면서 쿠바의 유기농업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가 농장을 찾은 이날도 미국에서 온 20여 명의 사람들이 유기농업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농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 “농산물 겉모양에 집착 말아야”
자연재배 작물을 연구하는 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작물 대다수는 땅에서 직접 키우기보다 인위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친환경 농산물이 인기지만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면 원칙적으로 친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쿠바에서 재배하는 작물들은 한국에서 보는 것들보다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많다.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크기도 작다.
이에 대해 로페스 대표는 “겉으로 보기에 윤기 있고 예쁜 것보다 겉모습은 못났어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이 더 좋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아이폰이나 삼성전자가 만든 고급 스마트폰을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먹는 것은 그토록 싼 것만 찾습니까. 이런 인식을 바뀌어야 인류의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로페스 대표는 한국의 경우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유기농업을 꽃피울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쿠바 농업은 100여 년 전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시작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5000년 농업 역사를 지녔고 토지나 기후 조건도 유리한 만큼 유기농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