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만화 ‘피부색깔=꿀색’ 개정증보판 낸 벨기에 입양아 출신 만화가 전정식씨
18일 서울 사당동 삼일공원에서 만난 벨기에 입양아 출신 만화가 전정식 씨. 프랑스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전 만화를 그리기 전까지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한국 땅을 밟기가 두려웠다. 이젠 한국에 오면 집에 온 거 같고 한국말도 친근하다. 물론 배울 생각을 하면 복잡하다”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벨기에 입양아 출신 만화가 전정식(융 헤넨·48) 씨는 1970년 다섯 살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굶주린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겼고, 아이는 다음 해 이런 메모와 함께 벨기에 가정에 입양됐다.
그가 그린 자전 만화 ‘피부색깔=꿀색’(길찾기·사진) 개정증보판이 이달 출간됐다. 낯선 땅에서 한국계 입양아로 자란 성장기를 담은 2009년 한국어판에 201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소회를 더했다. 그가 감독한 장편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은 지난해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수상했고, 7∼11일 열린 제15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 2013)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1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버려짐, 뿌리가 뽑힌 삶,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릴 때마다 겉도는 느낌이었다. 에둘러 가기보다 내 이야기를 직접 그리자고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생애 처음으로 붓을 들고 수묵화 양식으로 만화를 그린 작품이 ‘피부색깔=꿀색’이었다. 판타지 만화를 그릴 땐 종이를 화려한 색채로 가득 채웠지만 이번엔 흑백 그림에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했다.
전정식 씨의 자전 만화 ‘피부색깔=꿀색’ 개정증보판에 추가된 3부의 표지. 전 씨는 3부를 마치며 ‘뒤섞임과 다양성 만세!’라고 썼다. 길찾기 제공
만화는 같은 학교를 나온 한국인 입양아 친구들의 불행한 삶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고, 목을 매달고, 손목을 그어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친구도 정신병원을 오갔다. “그 장면을 그리며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살한 장면을 그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전적 이야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기에 참고 그렸어요.”
전 씨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 여성과 결혼해 피부색이 똑같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찾은 한국에서 끊어진 인생의 줄을 이으려면 자기 뿌리를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에게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를 ‘다시’ 배울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다섯 살 때까지 한국말을 했을 테니 다시 배우는 셈이죠. 언젠가 프랑스어를 잊고 한국말만 하고 살지 않을까요. 한국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