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 멤버 중 가장 먼저 연기자로 성공가도를 걸을 줄 알았다.
멤버들 중에 가장 늦게, 그것도 베이비복스 해체 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연기를 시작할 줄은 정말 몰랐다. 배우 김수로 연출의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수지 역을 맡은 간미연은 “이제야 용기가 났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첫 등장부터 실수를 했다. 등장할 때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콤팩트가 데굴데굴 굴러가 버리질 않나, 공연 도중 구두끈이 풀어지질 않나, 웃는 장면이라 웃었는데 관객들은 설정에 없는 진짜 웃음이 터진 걸로 오해해 버렸다. 무대 위에서 실수한 당사자는 마음이 조마조마할 테지만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라이브 연극의 묘미가 되기도 한다. 실수는 실수일 뿐, 중요한 것은 연극이 끝난 뒤의 여운이니까.
연기 도전, 그 두려움의 극복
바쁜 연예 활동으로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간미연. 선후배가 합심하는 유쾌한 연습실 생활은 대학생이 꿈꿀 듯한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단다.
10월 12일, 간미연(31)이 태어나 처음 오른 연극 무대를 본 후, 두 번째 공연이 있던 날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다. 첫 공연을 보았다고 했더니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어떠셨어요?”라고 물으며 걱정 반 기대 반인 표정을 지었다. 16세의 나이에 데뷔해 15년을 가수로만 살아온 연예인의 연극 데뷔 무대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기대 이상이었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았지만, 그보다 그의 변치 않은 외모에 먼저 감탄했다는 게 더 솔직한 말인 것 같다. 연극 관람에 동행했던 남자가 자꾸 ‘간미연 여전히 예쁘다, 아직 살아 있네’라는 말을 반복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하니, 수줍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와하하’하는 털털한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발칙한 로맨스’는 배우 김수로가 연출한 로맨틱 코미디로 호텔 스위트룸에서 10년 만에 첫사랑과 재회하는 남녀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간미연은 작품에서 이미 결혼을 했지만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성공해 돌아온 첫사랑 앞에서 갈등하는 수지 역을 맡았다.
“첫 공연 때 친구들을 초대하며 ‘손 조심해’라고 당부했어요. 오글거릴까 봐요(웃음). 그런데 의외로 친구들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낯도 많이 가리고, 표현도 서툴고, 소극적이라는 걸 잘 아는 친구들이라 제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대요.”
그는 연기에 도전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그 망설임이 자그마치 15년이나 지속됐다니 그 고민의 무게가 느껴졌다.
“베이비복스로 데뷔하고 나서 그 다음 해인가, 오디션을 보고 드라마에 캐스팅 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너무 겁이 나고,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몇 번 연습에 나가다가 그만 뒀거든요. 이제 연기를 시작해 보니까 지금까지 놓쳤던 기회들이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시작했으면 어땠을까요?”
2006년 베이비복스 해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홀로 서기조차 두려웠던 그에게 손을 내미는 방송국 PD나 기획사 사장 모두 가수가 아닌 연기를 권했다. 하지만 결국 걷지 않은 길이기에 그들이 자신의 그 어떤 것에 연기자의 가능성을 두었는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스스로의 마음도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인물의 마음을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또 저는 연기자를 할 수 있는 얼굴이라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8월까지 1년간 MBC FM 라디오 ‘친한 친구들’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라디오는 그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성격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모습은 밝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우울한 성격이었거든요. ‘나는 자신감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어’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도 받고 제 이야기도 살짝 꺼낼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에 살이 오르자 그간 그를 사로잡았던 두려움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두려움에 차마 시작도 못한 것들. 잘 하진 못하더라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할까? 아니면 가장 못하던 것을 해볼까? 어찌됐건 무언가에 도전하고 극복할 용기가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생방송 무대보다 어려운 게 인터뷰였고요, 몇 만 명 관중보다 어려웠던 건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거리의 관객들이었어요. 연극을 해 보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생각이었죠. 그러다 김수로 선배를 만났는데, 이 기회는 절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가 공연 연습을 시작한 것은 7월 말. 8월 중순부터는 첫 공연이 오를 때까지, 아침 10시에 집합해 밤 10시에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는 연기를 ‘발칙한 로맨스’연습실에서 처음 배웠다고 했다.
“대본을 달달 외워서 연습실에 딱 들어섰는데 너무 떨려서 대사를 한 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가수 출신이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실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희 팀원들이 격려해주고 제 안에 있던 것을 끌어내 줘서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수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대본 리딩 연습이 끝나고 무대에 처음 세워 놓았을 때 눈앞이 깜깜했었다고요.”
발성, 테크닉, 감정 연기 등 연극 무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2개월의 연습 기간은 속성 연기 강습과 비슷한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테크닉도 없고, 어떻게 동작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느끼는 대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같은 배역도 다른 배우가 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연기할 때마다 달라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요. 선배들도 이렇게 저렇게 뚜렷한 방법을 말 해주는 대신 ‘그냥 느끼는 대로 해’라고만 하셔서 그렇게 따라가고 있어요.”
그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부족함과 그것이 연기 신생아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이에 부딪혀 극복해 나갈 용기 또한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지금이 마치 대학교 신입생이 된 듯 들뜨고 신난다고 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이라서 과연 제가 잘 할 수 있는지를 실험 혹은 도전해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서 여전히 제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더 많지만 무대에 오를 때 의외로 마음이 편해서 신기해요. 아직 무대 위에 오르는 기쁨은 모르지만 연기 연습을 할 때, 정말 행복해서 신이 있다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정도에요. 이런 행복을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인터뷰 공식 질문, 안티ㆍ체중ㆍ연기ㆍ결혼
인터뷰에 앞서 간미연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거의 대부분의 인터뷰 기사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들을 발견했다. 키워드로 정리하면 안티·체중·연기·결혼이다. 1세대 아이돌로 데뷔해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하고 유치한 이유로 안티가 많았고, 유난히 살이 안 찌는 체질이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럼에도 늘 연기 도전에 기대를 모았던, 그리고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던 그였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이 네 가지 키워드 모두 지금껏 그에게는 외로움과 고민, 그리고 아픔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도 ‘아무생각 없이 애교만 많았다’던 16세의 나이에 너무도 많은 것을 짊어져야 했기에.
“데뷔할 때만 해도 통통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그땐 참 철이 없었어요. 고민도 없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티가 늘어나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너무 어린 나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부터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받아 칠건 쳐 내야 했는데, 그걸 다 마음속에 쌓아두고 살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살이 안 찌는 체질로 바뀌더라고요. 항상 자신감이 없어서 겁부터 먼저 먹었던 거죠.”
낯도 많이 가리고, 표현하는 데 서툴고, 앞선 걱정에, 스트레스를 쌓아두며, 예민하여 잠도 잘 못자는 성격. 그럴 거면 내숭이라도 잘 떨어 숨길 건 숨겨야 하는데, 그걸 못해 솔직하게 털어 놓고야 마는 성격. 그런데도 15년을 모질고 험난한 연예계에서 버텨냈다는 게, 장하고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베이비복스가 해체됐을 때도 그렇고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의 공백기가 길었을 때도 그랬고, 늘 자책에 빠져 있을 때 팬들의 한 마디가 저를 일으켜 줬어요. ‘이러다가 활동 접으면 안 돼요’ 이런 말들이요. 제가 뭔가를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응원해 주는 오랜 팬들도 계시고요. 저도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힘을 낼 수 있었죠.”
그는 인터넷 언어로 전환하면 ‘헤~’나 ‘데헷’ 정도로 표현될 법한 씩씩한 표정으로 웃었다.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그였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삶과 선택, 그리고 지금의 도전이 더욱 진중해 보인다. 이제는 진한 사랑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정작 그는 아직 뜨거운 사랑을 모른다고 했다.
“보통 남자들이 그렇더라고요. 먼저 좋아한다고 그러다가도 제가 좋아하게 되면 변하는 그런 거? 물론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겠죠? 지금까지는 제가 먼저 좋아한 사람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적극적이지 못해서 그랬죠. 이제는 느낌 오는 사람이 눈에 띄면 연애편지라도 건넬 각오가 돼 있어요. 딱 이 사람이다 싶지 않으면 결혼 안하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만약 결혼 한다면 두 번 정도 연애를 더 해보고 싶어요.”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결혼해서 예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럽단다. 최근에 절친인 S.E.S 유진의 집들이에 갔을 때도 그랬다.
“집을 너무 예쁘게 꾸며 놓은 것도 부러웠는데, 결정적으로 오빠(기태영)가 집에 있는 거예요. 단지 둘만의 공간이 있다는 거, 그리고 그곳에 든든한 남편이 있다는 거!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서울 강동구 암사동 부모 집에서 산다. 오빠는 결혼해 분가했지만 그는 서른이 넘어도 엄마 품이 여전히 좋은 애교 많은 딸이다.
“집에서 열대어를 키워요. 얼마 전에 아빠가 마트에서 구피 여섯 마리를 사오셨는데,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아파서 속상해요. 칼 뽑아 들고 싸우며 레벨업 하는 온라인 게임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뜨개질도 좋아하고요. 정말 상반되죠? 호기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정작 용기도 욕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욕심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거더라고요. 이제는 욕심을 좀 부려보려고 해요.”
그가 주연한 ‘발칙한 로맨스’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돋보였으며, 짜임새가 쫀쫀한 작품이었다. 아마도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 모두가 마음 속 첫사랑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간미연 또한 수지 그 자체로 보였으니, 그의 용기 있는 도전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글·진혜린|사진·조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