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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중현]‘정규직-비정규직 틀’ 시간선택제로 깨자

입력 | 2013-11-20 03:00:00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지난주 정부는 2017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시간선택제 근로자 1만6600여 명을 뽑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삼성전자가 내년 1월에 6000명을 뽑겠다고 발표하는 등 민간기업들은 앞 다퉈 관련 채용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년간 수만 명의 경력단절 여성, 은퇴자들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일제(全日制)보다는 적지만 근무시간에 비례한 월급을 받고, 4대 보험 등 처우 면에서 전일제 정규직과 차이가 없는 일자리다.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의 대명사였던 기존 시간제 일자리와 전혀 다른 새로운 근로형태이다.

노동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확산이 한국의 고용시스템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틀에서 벗어난 근로형태가 늘어나면 임금, 고용의 유연성이 높아지고 후진적인 노사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에서다. 2007년 2만 달러를 넘은 뒤 6년째 제자리에 있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대로 끌어올리는 데도 여성의 고용률 제고는 필수적이다. 여성 취업이 늘어 국민연금 가입자가 증가하면 연금기금 고갈 시기가 뒤로 미뤄져 국가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제도 도입과 관련해 정부 일자리 정책의 무게가 경력단절 여성, 은퇴자 쪽으로 실려 청년층 일자리가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할 2017년을 3년여 앞두고 이민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능력을 사장(死藏)해온 경력단절 여성들을 생산현장에 먼저 돌려보내는 건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이를 두고 야당과 노동계 일각에선 “질 낮은 비정규직만 늘릴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자녀를 돌보면서 하루 4시간 일해 월 15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고, 해고 위협이 없는 일자리가 정말 ‘질 나쁜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멀쩡한 일자리를 시간제로 쪼갠다”고 비판하는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 시절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취지가 ‘잡 셰어링’에 있었다는 걸 망각한 듯하다.

‘직장에만 전념하기’와 ‘전업주부로 살기’ 중 양자택일을 요구해온 한국사회에 ‘제3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은 시간선택제에 환호하고 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다면 승진과 임금상승을 어느 정도 포기할 준비도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시간이 흐르면 승진, 임금에서 전일제와 차이가 커질 것”이란 주장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짚지 못한 비판이다.

시간선택제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린 고용구조를 바꾸고 ‘시간제=비정규직=질 낮은 일자리’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깰 좋은 기회다. 다만 정부가 ‘고용률 70%’를 서둘러 달성하려고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건 경계해야 한다. 정규직 1명을 뽑을 자리에 시간선택제 2명을 뽑으면 임금 부담은 같아도 기업의 간접적 부담은 커진다. 서슬 퍼런 정권 초 분위기 때문에 기업들이 억지춘향 격으로 참여한다면 이 정책은 실패할 공산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시간선택제 도입으로 기업들이 비용 이상의 효과를 거둬 채용규모를 더 늘리고 싶어지도록 정부는 폭넓은 지원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희망적인 신호도 있다. 신세계, CJ그룹 등 이미 채용을 시작한 대기업들은 기대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인재들이 몰리자 반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선택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한국 ‘엄마’들의 열정과 경쟁력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지만 말이다.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