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간토대지진 희생자, 강제징용 피해자 명부 60여년만에 햇빛
국가기록원(원장 박경국) 관계자들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1운동 및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일본 군경에게 살해당한 조선인 일부의 신원을 확인한 기록물(1953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문서들은 올해 6월 일본 도쿄 일대사관을 이전할 때 발견된 것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952년 12월 15일 열린 제109회 국무회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 말이다. 6·25전쟁 와중에 남한 지역에 국한된 조사였지만 정부 차원에서 공식 조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었다. 이듬해 내무부(현 안전행정부)가 만든 문서가 올해 6월 일본 도쿄(東京) 주일 한국대사관 서고에서 발견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 ‘일정(日政)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등 총 67권이다. 이들 문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주일 대사관에 보내졌고 협정이 타결되면서 대사관 측은 문서보관실의 철제 캐비닛 안에 자료를 보관했다. 원본을 그대로 주일 대사관에 보낸 것인지, 필사본을 만들어 보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외교부가 만든 자료가 아니어서 정기적으로 관리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청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서고를 정리하다 이번 자료를 발견해 8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했다.
특히 충남 천안군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와 유중권(유 열사의 아버지), ‘이 씨’(유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제 열사로 추정)가 나란히 적혀 있다. 유 열사의 경우 “3·1독립만세운동으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 당함”이라고 피살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간토 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비록 알려진 희생자에 비해 적은 수이지만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첫 단계라는 의미가 크다. 특히 ‘경찰서 유치장에서 순국’ ‘헌병에 의한 총살’ 등 사망 경위가 상세히 적혀 있다. 경남 합천군 출신으로 두 살배기 아이 등 일가족으로 보이는 희생자 명단도 확인됐다.
피징용(징병)자와 관련된 기존의 명부는 1957년 당시 노동청이 만든 ‘왜정(일제강점) 시 피징용자 명부’가 있다. 이 명부에는 28만5771명이 등재돼 있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공식적으로 피징용(징병)자로 인정한 수는 약 16만 명에 불과하다. 기존 명부의 정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명부에는 생년월일과 주소까지 포함돼 있어 피해자 판정 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일본 도쿄(東京) 주일 한국대사관 서고에서 발견된 3·1운동 피살자 명부 가운데 충남 천안군 기록이 적힌 페이지. 오른쪽 첫 번째 칸에 유관순 열사의 이름, 나이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왜병에 체포돼 옥중에서 타살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이와 함께 자료의 작성과 이관, 보관 과정도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경위를 통해 주일 대사관에 전달됐는지, 이번 명부의 원본이 중앙정부에 보관돼 있는데 정부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 수많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수십 년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닌지, 왜 수십 년간 대사관 서고에 묻혀 있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강효숙 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가 그동안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발견된 문서가 국내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일본 식민지배 피해 조사에 3·1운동과 간토대지진이 포함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이번 자료는 한일 간 식민지배 배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근거 자료다. 거기에 3·1운동과 간토대지진 피해자 수가 집계된 것은 일본에 두 사건의 책임도 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한일 간 3·1운동과 간토대지진 피해 보상 문제도 논의했는지는 추가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끝났다고 보는 일본 정부가 이번 자료로 자세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이성호 starsky@donga.com·윤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