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이지아 낙점 과정으로 본 ‘김수현 사단’ 캐스팅 법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주연급 배우 가운데 톱스타는 없다. 김수현 작가는 예상 밖의 배우를 파격 캐스팅하거나 기존 ‘김수현 사단’ 멤버를 선호한다. 왼쪽부터 송창의, 이지아, 하석진, 엄지원, 조한선, 서영희. 삼화네트웍스 제공
9일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세결여)는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김수현 작가가 2년 만에 내놓는 지상파 드라마라는 점 외에도 주인공 오은수를 비롯해 주요 배역을 누가 맡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한가인 송지효 김사랑 같은 여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고, 일부는 대본 리딩에까지 참석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캐스팅이 늦어지자 전작 ‘결혼의 여신’은 2주간 연장 방송됐다. 결국 방송 한 달을 앞두고 오은수 역으로 캐스팅 된 배우는 이지아였다.
‘한국 드라마의 대모’ 김 작가는 드라마 작법뿐만 아니라 캐스팅에서도 남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출연진이 확정된 후 대본 리딩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김 작가 작품의 경우 대본 리딩 과정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캐릭터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 출연자가 교체되기도 한다. 겹치기 출연도 안 된다. 한 방송 관계자는 “김 작가는 배우가 자신의 작품에만 집중하길 원한다. 스타나 중견 연기자라도 예외는 없다”고 전했다. ‘세결여’ 연출자인 손정현 PD는 “(김 작가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대본 리딩에 참여해 배우의 연기를 지도한다”면서 “그만큼 배우에게 요구되는 연기의 수준이 높다”고 전했다.
김수현 작가 홈페이지(kshdrama.com)에 따르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작가의 59번째 TV 드라마다. 동아일보DB
‘김수현 사단’은 들어가기는 까다롭지만 일단 들어가면 든든한 ‘백’이 된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검증된 배우는 꾸준히 기용하는 편이다. ‘세결여’의 주연급 배우인 엄지원이나 하석진은 작가의 전작인 ‘무자식 상팔자’에서, 송창의는 ‘인생은 아름다워’ ‘천일의 약속’에서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김수현 사단인 강부자 김용림 김용건 한진희 김자옥 오미연 양희경 등 대부분의 중견 연기자들은 4∼10차례 김 작가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의 인기나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 때론 논쟁적인 인물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도 김 작가 캐스팅의 특징이다. ‘세결여’의 주연으로 발탁된 이지아는 서태지와의 비밀결혼과 이혼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가수 조영남과 이혼한 뒤 드라마 출연에 어려움을 겪던 윤여정을 변함없이 기용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위안부 화보’ 파문으로 방송 출연을 포기했던 이승연은 ‘사랑과 야망’으로 복귀했으며, 동성애자 커밍아웃 이후 방송 출연이 어렵던 홍석천도 ‘완전한 사랑’의 출연 기회를 얻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최근 김 작가의 작품에는 톱스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연기력이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한 배우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이는 작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배우들은 김 작가 작품에 출연했다는 경력만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연기력 향상의 효과도 거둔다. 안혁모 IHQ연기아카데미 원장은 “심은하는 ‘청춘의 덫’ 출연을 계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한고은도 ‘사랑과 야망’으로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시청률 기복이 심하지 않은 데다 작품성도 높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김수현의 작품을 탐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