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학대로 숨진 여아 생모 1인시위
계모의 구타로 숨진 이모 양(8)의 생모 심모 씨(42)가 19일 오전 울산지검 정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 씨는 “아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살해한 계모를 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19일 오전 11시 50분경 울산 남구 옥동 울산지검 정문 앞. 계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해 숨진 이모 양(8)의 생모 심모 씨(42)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았다. 심 씨는 18일부터 이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 씨는 추운 날씨 속에 이렇게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내 아이를 살해한 박○○을 살인죄로 처벌해 주십시오. 아이 아빠를 공범으로 처벌해 주십시오. 저도 죄인이니 처벌해 주십시오.’
심 씨는 2009년 10월 남편 이모 씨(47)와 이혼하면서 딸과 헤어진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딸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친권이 없어 딸의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 없다 보니 주소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전남편은 심 씨의 전화 수신을 차단했고, 딸의 이름도 바꿔 버렸다. 1,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 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심 씨는 말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혼절했던 심 씨는 급히 택시를 타고 경남 창원에서 울산으로 갔다. 그러곤 26일 장례식장에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 씨는 장례식장에서 또 하나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심 씨는 전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한때 친한 친구처럼 지냈던 박모 씨(40)였고 바로 그 박 씨가 딸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심 씨가 전남편 이 씨와 결혼한 것은 2004년 6월. 이듬해 12월 이 양을 낳았다. 하지만 분양대행사 직원인 이 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을 따라 전국을 다니기에 2009년 10월 이혼할 때까지 5년 4개월 동안 가족이 함께 살았던 기간은 1년 6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주말 또는 월말부부로 지냈다.
대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근무하던 이 씨는 역시 대구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근무하던 박 씨를 업무상 자주 만났다. 서울에 살던 심 씨가 2007년 6월 대구로 이사를 해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 이때 이 씨는 “낯선 도시에 빨리 적응하라”면서 박 씨를 소개시켜 줬다. 당시 박 씨도 두 딸을 가진 유부녀. 양쪽 부부가 식사도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다. 심 씨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박 씨와 상의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심 씨는 딸을 데리고 2008년 11월 시가가 있는 경남 창원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부터 남편 이 씨는 가정에 소홀히 하다 결국 2009년 10월 이혼했다.
심 씨는 “전남편이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위자료도 한 푼도 받지 않은 채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박 씨도 이혼한 지 3개월 된 상태였다고 한다.
심 씨는 “돈을 빨리 벌어 아이를 데려다 키우려고 했는데…. 소풍 가기 위해 돈 2000원을 갖고 갔다는 이유로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잔인하게 때려죽일 수 있느냐.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씨는 “○○이는 늘 잘 웃고 유치원이나 친구들과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고 말도 잘 들었다”며 이혼으로 헤어지기 전까지 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 씨는 13일 이 양이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하늘나라로 소풍가라’는 뜻을 담아 딸이 좋아하는 김밥과 과자를 올렸다. 동아일보는 반론을 듣기 위해 이 양의 생부 이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