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아니, 주례도 없이 결혼식을 어떻게…. 하지만 그건 요즘 세대에겐 하찮은 질문이며 노인네 기우로 치부될지도 모를 고리타분한 물음이다. 그들에겐 이미 ‘아니, 주례가 무어 필요해’라는 분위기니까. 사실 그 기능만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지금도 계속 중이지만 주례의 소임이란 게 성혼선언문 낭독과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덕담 일색의 주례사, 신랑신부와 기념촬영이 전부니까. 그런 데다 까놓고 말해 하객에겐 주례사 듣는 것만큼 따분한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축의금 접수와 혼주에게 눈도장 찍기만 마치면 그냥 돌아가거나 식당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 주례라는 게 그걸 서는 이에게도 똑같이 버겁고 낭패스러운 일이다. 개중엔 의견을 달리할 분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건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우선은 주례로서 할 말이 없다. 신랑신부를 잘 알지 못하니 당연하다. 그런 데다 그 역할과 소임에 대해선 그걸 부탁한 신랑신부와 같은 생각-불필요-이니 아예 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끝으로 아무도 듣지 않을 주례사를 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니 주례 없는 결혼식은 나부터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입장이다.
연전 일본에서다. 결혼예식 전문호텔의 야외결혼식장인데 신랑신부가 20명 정도 하객에게 둘러싸인 채 오후 4시쯤 주례 앞에서 10여 분간 간단한 예식을 올렸다. 그러고는 사진 촬영 후 호텔로 되돌아가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게 전부였다. 그때 주례의 역할을 보았더니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성혼선언문 낭독이 전부일 뿐 주례사는 없었다. 덕담으로 축하한다는 말 외엔. 실제적이고 기능적이며 간편해서 좋았다는 게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본의 예식 풍습은 대개가 그랬다. 하객도 소규모로 구성하고 이들에게만 초대장을 돌린다. 그러다 보니 예식을 올리는 곳도 소규모다. 신혼여행도 예식을 마친 직후 피곤한 상태로 떠나는 우리와 달랐다. 한두 달 후 살림이 정리된 다음 홀가분하게 떠난다. 요즘 우리의 실용적인 결혼식이 여기서 자극받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경향을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생각 같아서는 이참에 좀더 나아가 신랑신부를 잘 알고 그 결혼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만 참석하는 진정한 결혼축하식장으로 예식이 환골탈태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는다. 너무도 오랜 관습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지난해 캐나다 로키, 레이크루이스란 곳의 디어로지 호텔에서다. 하객 10여 명이 하루 저녁을 신랑신부 그리고 가족과 더불어 저녁을 함께 먹으며 즐겁게 보낸 뒤 이튿날 호텔 정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결혼식이었다. 그중 한 하객과 이야기 끝에 우리 결혼식 풍습이 나왔다. 그이가 놀란 건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최악은 호텔 예식장에서 한 시간 만에 버려지는 수천만 원어치의 꽃이었다. 우리 일상이 다른 사람 상식에 어긋난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다. 나는 결혼예식의 긍정적인 변화가 이런 데서부터 일어났으면 하는데 과연 그게 나 혼자만의 바람인지…. 결혼식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다.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