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정치부 기자
삼성의 오승환은 시속 150km가 넘는 묵직한 돌직구가 주무기인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2차전 홈런 한 방에 패전투수가 됐다. 돌직구는 빠른 만큼 제대로 맞으면 비거리도 크다.
9월 16일 화창한 가을날, 국회 한옥 사랑채에서 열린 3자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서로에게 강한 돌직구를 던졌다.
상대의 돌직구에 맞은 마음의 상처는 컸다. 박 대통령은 회담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장외투쟁을 고집하면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고, 김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맞받았다.
돌이켜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었다. 5월 초 김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 당선됐을 때 청와대는 “대화가 통할 상대가 왔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물밑 대화도 많이 했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 논란이 계속되고 3자회동에서도 정국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상황이 악화됐다. 청와대는 김 대표를 겨냥해 “친노 강경파에 휘둘리는 선택권 없는 대표”라고 했고, 김 대표는 “대통령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불통”이라고 비판했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3자회동으로 돌아가 보자.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했던 것처럼 “의혹들에 대해 반드시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겠다. 모든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지켜나가겠다”고 말해 김 대표의 체면을 세워줬더라면 어땠을까. 또 김 대표도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과를 요구하는 대신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확실한 개혁안 등 정권이 긴장감을 느끼되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를 했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오래 정국이 경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색된 정국을 풀려면 신뢰가 쌓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야가 힘 대신 서로에게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제구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국민이 바라는 상생 정치의 결실은 크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유희관처럼.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