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에 ‘생명의 손길’을]<2>민간단체의 의료비 지원
혈액암을 앓던 2007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김찬민 군(왼쪽 사진 왼쪽)은 정부와 민간 의료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암을 이겨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제2의 박태환을 꿈꾸며 하루도 수영을 거르지 않는 건강한 10세 소년이 됐다(오른쪽 사진). 김찬민 군 가족 제공
엄마는 이를 악물고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항암치료 중인 아들을 잠시 병원에 맡겨두고서. 한 손에는 서류 뭉치를, 다른 손에는 아이 사진을 들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공무원들의 말투는 차가웠다. “지원 자격이 될지 안 될지 애매하네요. 조건이 돼도 서류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김찬민 군(당시 4세)의 엄마 A 씨는 그때마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의료비 지원을 받기 위해 구청 동사무소 보건소부터 찾아갔다. 공무원들은 복잡한 지원 서류를 갖춰 다시 오라고 했다. 병원에서 아들 곁을 지키면서 서류를 준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렵게 준비한 서류를 들고 약속시간에 보건소에 가면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무관심한 태도는 엄마를 더 지치게 했다. A 씨는 보건복지부에 항의 전화까지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원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차상위계층 중증질환의료지원 명목으로 약 10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입원 첫 달 병원비만 1500만 원이 넘었다. 총 6000만 원의 병원비를 남편 월급 150만 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교회, 친지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치료비 마련에 지친 엄마는 두 손을 모아 이렇게 기도했다. “신께서 제 아들을 데려가시는 것이 정녕 뜻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이 아이와 함께한 4년 동안의 행복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포기’라는 두 글자를 떠올릴 무렵. 병원의 사회사업실에서 연락이 왔다. 민간 의료 지원 단체의 문을 두드려 보라고 제안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7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한국소아암재단은 헌혈증 약 20장을 지원했다. 그 덕분에 400만 원 상당의 피를 얻었다. 김 군은 여러 민간단체의 도움에 힘입어 10개월 만에 치료를 마쳤다. 퇴원 뒤에는 단체들이 제공하는 반려동물 정서교육, 영어캠프에도 다녀왔다. 6년이 지난 지금 김 군은 제2의 박태환을 꿈꾸며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장에 갈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 A 씨는 “민간단체는 보이지 않는 구름 위에서 내려온 천사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치료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건보재정만으로는 의료비 감당 안돼
한국은 정부의 의료비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공공부문이 의료비를 감당하는 비율이 전체의 55.3%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2.2%에 못 미친다. OECD 국가 중 한국보다 의료비 공공재원 부담률이 낮은 곳은 멕시코와 민간보험이 활성화된 미국 정도다.
의료비 수요가 늘어난다고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기도 어려운 구조다. 이 재정의 약 85%가 국민이 내는 보험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건강보험법 65조는 현재 5.89%인 보험료율을 8%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 황도경 한국보건사회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공공부문에서 의료재정 확충이 어렵기 때문에 민간 지원의 파이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내 민간단체의 의료비 지원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11년 한국의료지원재단이 설립됐지만 3년 동안 약 5억 원밖에 지원하지 못했다.
한편 공동모금회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동건 공동모금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희망 2014 나눔 캠페인’ 출범식을 열고 내년 1월 31일까지 연말연시 이웃돕기성금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