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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클럽 이혼

입력 | 2013-11-21 03:00:00

플루트 전공 아내 “폐활량 늘려야” 자정 넘겨 운동
말리다 지친 남편, 후배 불러 술마시고 외박-폭행




아내가 헬스클럽에서 일주일에 3, 4일을 자정 넘은 시간까지 운동하고 들어온다면 이혼 사유가 될까.

A 씨(29·여)는 음대 편입을 준비하던 중 남편 B 씨(33)를 만났다. 1년간의 연애 끝에 2010년 결혼식을 올렸으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이후 A 씨는 대학 편입에 성공했고 B 씨는 모아둔 돈으로 등록금을 내주기도 했다.

평온하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플루트를 전공하던 A 씨가 ‘폐활량을 기르겠다’며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클럽에 운동하러 다니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A 씨는 학교가 끝난 뒤 오후 10시가 넘어 운동을 가 밤 12시 넘어 집에 들어오곤 했다. B 씨는 “안 그래도 수업과 연주회 준비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은데 헬스클럽에 가지 말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A 씨는 “악기를 다루려면 복식호흡이 중요하고, 폐활량을 키워야 한다”며 남편의 요구를 거절했다. A 씨는 남편에게 헬스클럽을 다니자고 했지만 운동에 별 흥미가 없던 B 씨는 이내 그만뒀다. 이후로도 B 씨는 “헬스클럽에 가지 말라”고 계속 종용했다.

그러던 2011년 2월 밤,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헬스클럽에 가자 화가 난 남편은 근처에 있는 자신의 부모 집으로 가버렸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왔다. 실랑이를 벌이다 감정이 격해진 남편은 아내의 뺨을 때렸다. 화가 난 아내는 남편을 경찰에 상해 혐의로 고소했고 이후 가까스로 화해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봉합되는 듯했지만 이후에도 A 씨가 헬스클럽 가는 걸 중단하지 않자 B 씨는 빈집에 남자 후배를 데려와 술을 마신 후 함께 속옷 바람으로 잠을 자기도 했다. 자정 넘어 운동을 다녀와 이 모습을 본 아내는 “성적 정체성이 의심된다”며 싸움을 했고 결국 A 씨와 B 씨는 서로 법원에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에선 “둘 다 잘못했다”며 두 사람의 위자료 청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심 재판부는 아내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가사3부(부장판사 이승영)는 “남편이 아내의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면서 아내를 자신의 생활패턴에 맞추려 해 갈등을 증폭시켰다”며 “파탄의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A 씨에게 1000만 원을 주라”고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B 씨 역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계속 저녁 늦게 운동을 갔다는 것만으로는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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