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하는 ‘고다미’를 안은 조선종 씨가 경기 의왕시 계원예술대 캠퍼스의 동아리방을 가장한 자취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 안으로 햇볕은 오전에 잠깐 들어오기에 가림막은 사생활 보호용으로 쓴다. ‘갇힌 거 아님 임시보호 중’은 홀로 창밖을 내다보는 고양이를 본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써놓았다. 그도 임시보호 생활을 끝내고 번듯한 거처를 얻을 수 있을까. 의왕=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빨래를 해야 할 때는 야음을 틈타 10L 세탁기가 실린 손수레를 민다. 새벽 2시 학교 경비원도 잠들었을 시간, 세탁기 호스를 공용화장실 안 대걸레 씻는 수도꼭지에 연결한다. 사람들이 대소변을 해결하는 공간에서 내 옷들은 때를 벗는다. 9월 중고 가전센터에서 10만 원을 주고 산 구형 세탁기는 늘 소리가 요란하다. 일주일 치 빨래를 먹은 세탁기가 힘이 부치는 듯 윙윙거리며 몸을 떤다. 나도 혹시 누군가가 볼까 불안에 떤다.
손수레를 밀고 텅 빈 복도를 지나 다시 방에 들어선다. 사람들 눈을 피해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던 때를 떠올리면 호사가 따로 없다. 자취방 살림은 단출하다. 책상, 책장, 접이식 침대와 매트리스, 소형 냉장고. 모든 살림은 학교 주변 폐기물재활용장에서 주워 온 것이다. 겨울엔 역시 주워 온 전기요 위에서 잠을 청한다.
#0장: 2013년 여름 투명인간
겨울보다 무서운 게 여름이었다. 방은 손이 닿는 곳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질퍽거렸다. 곰팡이가 눈에 띈다 싶더니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곰팡이가 방을 삼키는 건 찰나였다. 옷걸이에 걸어둔 겨울 코트 지퍼를 내렸더니 검은색 안감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곰팡이의 습격을 피한 건 매일 입는 여름 티셔츠 몇 벌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곰팡이가 몸에 옮겨 붙지 않았는지 살폈다.
학교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동기보다 예닐곱 살 많다는 이유로 학부 대표가 되면서부터였다. 신입생을 맞을 준비로 매일 밤늦게까지 학부학생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했다. 동기들이 집에 돌아가면 할 일이 더 있다며 회의실에 남아 잠을 잤다. 눈치가 보이면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다른 동아리방에 갔다. 당장 쓸 물건은 가방 서너 개에 나눠 담고 옷가지는 캐리어에 넣어 끌고 다녔다. 무거운 짐은 박스에 넣어 건물 후미진 곳에 보관해뒀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완벽한 투명인간이 될 순 없었다. 나의 숨바꼭질 생활을 눈치 챈 몇몇 술래가 압박을 해왔다. “형. 여기 우리 학생회 공간인데, 올 때마다 형 집에 오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주섬주섬 짐을 쌌다. 동기들은 어질러진 이불과 옷가지를 훑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3월 총학생회에 부탁을 해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었다. 하지만 9월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을 하자 다시 문제가 제기됐다. 나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 20여 명이 동아리를 만들어 내가 안거할 공간을 마련해줬다. 다음 학기에 복학할 몸이지만 여전히 신분이 불안한 나는 더욱 숨죽여 산다.
#2장: 기자의 현장답사
학교에서 생활하는 조선종 씨가 동아리방 천장에 설치된 냉온풍기에 빨래를 널고 있다. 의왕=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문을 열자 동아리방에 있어야 할 커다란 회의용 탁자나 의자들은 없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 천장에 걸린 속옷, 양말, 수건이 영락없는 자취방 모양새였다. 바닥에는 목욕 바구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 크기는 싱글 침대 4개를 넉넉히 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집주인은 계원예대 2학년 조선종 씨.
조 씨가 정말 1년 동안 살았을까. 자취방 앞에서 조 씨와 마주친 청소부 아주머니는 자주 봐서 친근하다는 듯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청소부 아주머니와 학교 경비원은 “집이 멀어서 여기서 자주 잠을 자는 학생” 정도로 알고 있다고 했다. 9월 학생 자치공간을 점검하러 나온 한 교직원에게 자취방이 발각되기도 했단다. 교직원은 “동아리 공간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돌아갔다고 한다.
조 씨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한 학생은 9월 총학생회를 찾아가서 자취방 점거를 문제 삼았다. 조 씨 동급생인 여학생 A 씨(21)는 “친한 친구들은 신기하다, 딱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싫어하는 친구는 학교 전기와 물을 공짜로 쓰니까 뻔뻔한 도둑놈 심보라고 욕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3장: 투명인간의 변명
“방값 벌려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잠깐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이지만 학교에 살 권리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도 원래 학교 앞 고시텔에서 살았다. 한 달 방값은 48만 원. 방은 침대와 책상만으로 꽉 찼다. 딸린 화장실은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았다. 주말이면 인근 지하철역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시급 5000원. 방값을 내면 남는 돈은 없었다.
그는 2001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학교를 관뒀다. 그가 드러머로 활동했던 밴드 ‘워터멜론’은 같은 해 10월 국내 록페스티벌 원조 격인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8개 팀에 뽑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도 포기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은 음악활동을 이어간 나머지 밴드 멤버의 공연 무대 사진을 찍으며 달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연평도 포격 현장,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현장을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현장에서 홀로 뛸 때마다 사진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다. 배움의 갈증이 극에 달해 대학 문을 두드렸다. 창의적인 예술가를 키우는 학교 커리큘럼과 교수진이 좋아 12학번으로 아트앤플레이군(群·학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대신에 학비, 생활비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다. 입학금 500만 원은 벌어둔 돈으로 충당했다.
1학년 2학기부터 학자금 생활자금 대출을 받았다. 꿈에 그리던 학교에 왔는데 교수들은 주말에 각종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자주 냈다. 주말에 커피숍에서 일하느라 번번이 전시회를 가지 못했다. 주중에 배운 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 늘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제게 주어진 대학생활은 딱 2년밖에 없어요.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지만 예술 공부는 지금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
#4장: 지금도 어디선가 숨바꼭질 벌일 청춘들
계원예대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던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가 만든 설계도에는 기숙사가 포함돼 있었다. 학교에는 기숙사 예정용지임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공터가 있었다. 지금은 팻말은 사라지고 텃밭으로 변해 있었다. 기숙사 문제는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소재 주요 43개 대학 기숙사 수용률도 9.6%에 불과하다.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민달팽이 유니온’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지난달 펴낸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20∼34세)의 14.7%인 139만 명이 지하 방과 고시원 같은 주거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약 14m²)을 마련하는 데 월 평균 50만 원이 든다. 시급 5000원을 고려하면 월 평균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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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 씨가 답했다. “1980년대 대학생 선배들처럼 짱돌을 던지면서 시위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대신 저는 예술대 학생이니까 청년 주거문제를 학교에 직접 살아봄으로써 퍼포먼스 아트로 풀어낼 순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쫓겨나면 학교에서 노숙하던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의왕=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