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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부형권]삼성의 ‘사서 손해 보기’

입력 | 2013-11-21 03:00:00


부형권 정치부 차장

“자랑스럽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아요.”

지난해 경영전문대학원(MBA) 주말반 수업에서 외국인 교수가 “한국인으로서 삼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 기억이 난다. 자랑스러움은 해외 출장이나 여행 중 느꼈다. ‘대한민국은 몰라도 삼성은 아는구나.’ 그런데 왜 내 입에서 “I love Samsung(사랑해요 삼성)”은 안 나올까. 주위를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원래 두산 팬이었어?”

“아니.”(회사 동료)

“그런데 왜 두산 베어스를 그렇게 열심히 응원해?”

“삼성은 그냥 주는 것 없이 밉잖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삼성도 이런 민감 기류를 감지했나 보다. 2011, 2012년 우승 축하 신문광고는 ‘(삼성)팬 여러분 감사합니다’였는데 올해는 ‘모든 야구팬께 우승의 영광을 바친다’고 했다.

2007∼2009년 삼성을 출입하면서, MBA에서 삼성 관련 과제를 하면서 ‘자랑스러운 삼성이 사랑스럽지 않은 이유’를 진단해 보곤 했다.

우선 삼성은 ‘위’만 보고 산다. 아래, 좌우, 나아가 ‘삼성 밖’까지 살피는 여유와 인간미가 안 느껴진다. 철저한 성과·실적주의, ‘관리의 삼성’의 관리 때문일 듯하다. 외부에서 영입된 한 삼성 임원은 “부하 직원이 나와 손님의 약속과 관련해 내 사정만 먼저 챙겨 난처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둘째, 삼성 특유의 위기 경영이 슬슬 짜증스럽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 만찬에서도 “자만하지 말자”며 다시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지난해 이 회장의 “더욱 분발해 달라”는 한마디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출근시간이 오전 7시 반에서 오전 6시 반이 됐다고 한다.

머리는 ‘저러니까 오늘의 삼성이 있는 거지’라며 끄덕인다. 하지만 가슴에서는 ‘분기 이익 1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가 위기면, 우리 회사는 뭐지’ 하는 울화가 대한민국 전역에서 터져 나온다.

끝으로 미워하며 닮아 간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삼성이 사랑받지 못하는 건 졸부(猝富) 근성 때문이다. 일부 임원은 로또 맞은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공채 출신이 아닌 그의 화끈한 진단이 신선했다. ‘삼성 안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러나 그가 비판한 졸부의 비례(非禮)를 그에게서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음대로 진단했으니 내 나름의 처방도 내려 보겠다. 삼성답지 않게 ‘사서 손해(損害) 보기’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이익이 언제 날지 모르는, 어쩌면 안 생길지도 모르는 사회적 상품이나 국가적 이슈에 돈이 아닌 관심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 대표 종목으로 통일 어젠다를 추천한다. 동아일보의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업무를 하면서 삼성 관계자들에게 “통일 문제에 왜 소극적인가”라고 물으니 한결같은 대답이다.

“삼성의 대북 스탠스는 리스크 매니지먼트(위기관리)이기 때문이다. 북한(분단)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게 최선의 길이다.”

삼성답지만 대한민국 대표기업답지는 않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20, 30대의 통일의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고 인기 직장인 삼성이 통일코리아의 미래를 얘기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삼성이 “정부 아닌 민간 기업이 통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최근호가 대답해 줄 것이다.

‘2013년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는? 박근혜 대통령 52위, 이건희 회장 41위.’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