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렛 미 고’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청춘이 보내온 옛 연인의 물건들. 고재욱 작가 제공
화려한 만남 뒤 겪는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을 자신의 삶에서 잘라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붙잡으려 한다. 그리고 대개 그러한 성향은, 헤어진 상대방이 남긴 자취를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사랑하는 방식보다도,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방식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 보이곤 한다.
나는 옛 연인이 남기고 간 물건을 간직하고 있었다. 연애 시작 전 ‘밀당’을 하며 주고받았던 물건부터 헤어진 후에 그녀가 남기고 간(사실은 버려진) 물건까지.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상자에 넣어두었다. 그 물건을 돌려보내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몇 달 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내 옛사랑의 물건들을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 애인이 남긴 물건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얽매인 물건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지금도 진행 중인 헤어진 옛 애인이 남긴 선물을 모아 전시하는 ‘네버 렛 미 고(Never let me go)’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다. 헤어진 옛 연인들의 물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보관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비롯한 쿨하지 못한 사람들의 추억 정리를 돕고자 하는 시도이다.
참여자들은 대개 20, 30대로 치열한 사랑을 경험했던 청춘들이다. 그들이 보내준 물건들은 다양하다. 옛 연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목걸이, 군대에 있었던 2년 동안 연인과 주고받았던 편지들, 결혼을 약속하는 증표였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그 옛날 불을 밝히고 사랑을 전했을 하트 모양의 빨간 초, 함께 탔던 비행기표 등 종류도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옛 애인이 보내준 청첩장도 있다.
이 물건들을 보내준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쿨하지 못함’이다. ‘네버 렛 미 고’ 프로젝트에 물건을 보내주는 대다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지금까지도 차마 그 물건들을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춘은 쿨해지고 싶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고재욱 작가
많은 분들이 물건을 보내주었다. 이 물건들은 나의 궁상맞은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내가 내 안에 남아 있는 옛 연인의 흔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했던 프로젝트가 11월 20∼29일, 서울 홍익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된다. 그곳에서 ‘네버 렛 미 고’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고재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