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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주명]쌀 관세화 추가유예 협상… 국가경제 차원서 판단을

입력 | 2013-11-21 03:00:00


이주명 주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모든 농산물에 대해 수량 제한이나 각종 비관세 조치를 관세로 전환해 시장을 개방하는 관세화 원칙을 추진했다. 당시 쌀 관세화를 유예했던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2004년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는 대가를 제공하고 쌀 관세화를 2차로 유예했다. 필리핀은 2012년 2차 유예기간이 종료됐고, 우리나라는 2014년 말까지 1년여 남아 있다.

필리핀은 3차 유예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냉정했다. 협상 참여국들은 WTO 농업협정에 의한 쌀 관세화 유예는 한 번만 허용된다면서 유예를 반대했다. 필리핀은 현재 미국, 중국, 호주 등 9개국과 웨이버(waver·의무면제) 협상을 추진 중이다. ‘웨이버’는 회원국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허용되지 않는 까다로운 협상이다. 필리핀은 웨이버 협상 과정에서 쌀과 쌀 이외 품목에 대한 각종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필리핀은 쌀 관련 추가 부담에 대해서는 추가 유예의 대가로 80만5000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의무수입 관세율도 현재보다 5%포인트 낮은 35%로 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쌀 이외 품목의 관세 인하 등의 요구에는 합의점을 찾지 못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필리핀이 추진하는 쌀 관세화 3차 유예 협상은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는 2015년 1월 1일부터 관세화하거나 웨이버 협상을 통해 관세화를 추가 유예할 수 있다. 웨이버의 경우 WTO의 모든 회원국을 협상 대상으로 해야 하며, 쌀과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해 상당한 대가 지불이 불가피하다.

왜 필리핀은 상당한 부담에도 쌀 관세화를 추가로 유예하고자 할까? 필리핀은 연간 100만∼200만 t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의무수입 물량을 현재의 35만 t에서 80만 t 수준으로 확대하더라도 연간 최대 수입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쳐 국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필리핀과 다르다. 쌀 관세화 유예로 인한 의무수입량 41만 t(2014년 말 기준) 외에는 수입되는 쌀이 없다. 의무수입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연간 쌀 생산량이 400만 t 수준인 우리 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우리나라가 필리핀처럼 웨이버를 통한 관세화 추가 유예를 추진할 경우, 회원국들은 한국의 경제 규모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쌀뿐 아니라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쌀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가 1년여 남았다. 필리핀의 사례를 곱씹으면서 식량안보의 기본인 쌀의 안정적 생산기반 확보라는 기본 가치하에 농업인, 소비자,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

이주명 주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