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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옥죄니, 내 숨 막힐줄이야…”

입력 | 2013-11-22 03:00:00

2013 화두 경제민주화의 역설… 유탄맞은 사회적 약자들




“대형마트에 납품하려고 밭 6600m²(약 2000평)에 기르던 부추의 절반을 폐기했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경기 용인시에서 상추와 부추 등을 재배하는 A영농법인은 지난해 6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시작된 후 매출이 30% 감소했다. 대형마트들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입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영농법인 대표 B 씨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가면 기존 거래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값을 안 쳐 준다”며 “인건비, 포장비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어 상당수 물량을 폐기했다”고 말했다. 영농법인은 13명이던 직원을 8명으로 줄였다.

정치권과 정부는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각종 대기업 규제를 신설했다. 하지만 이 제도들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납품단가 조정 요건을 강화한 하도급법이 4월 국회를 통과하자 부담을 느낀 대기업들이 국내 협력업체 비중을 낮추는 일도 생기고 있다. 개정된 법은 부당한 단가 인하나 발주 취소, 부당 반품 행위가 있을 경우 3배 범위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했다.

대기업 C사는 하도급법 개정 이후 6개월 만에 국내 협력 중소기업에서 납품받는 비율을 종전보다 8%포인트 줄였다. 그 대신 그만큼을 해외로 돌렸다. 재계 관계자는 “정당한 단가 인하의 범위가 애매하다 보니 대기업 사이에 국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줄이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 거래를 막기 위해 마련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정작 중소기업 대주주가 타격을 입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세청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신고자 1만324명 중 75.9%인 7838명이 중소기업 대주주였다. 이들이 낸 세액은 282억 원에 이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확대되면서 대기업과 거래하는 농민 등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2011년 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대기업의 국산 콩 수매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가 적합업종 지정 해제를 요구했으나 동반성장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중에도 통과되면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본사의 불공정 행위로 대리점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대리점법(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면 본사가 대리점을 줄이고 직영점과 인터넷 등으로 판로를 바꿔 결국 대리점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도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국회에는 납품업체가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통업체에 지불하는 판매장려금을 제한하거나 폐지하는 법안도 계류 중이다. 하지만 법이 통과될 경우 유통업체가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 유명 제품만 취급하면서 오히려 중소업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시장에서의 거래를 법으로 강제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며 “일단 예외조항을 통해 부작용을 보완하고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 법 재개정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