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낸 최승호 시인
신작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를 낸 최승호 시인. 그는 “이번 시집에서 이질적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병치하는 몽타주기법을 적용해 이미지 간의 부조화와 충돌 효과를 얻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세속도시의 즐거움’ 등으로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도 욕망과 죽음, 소멸과 부재, 문명의 위기와 고독 같은 테마에 대한 천착이 여전하다. 가치가 아닌 이미지를 좇고, 세계를 허물어가며 지탱되는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풍자와 야유도 넘쳐난다.
‘한라산 물을 먹나/백두산 물을 먹나/나중에는 남극의 빙산을 먹어야 하나//생수를 들고 나오는 내 등 뒤에서/편의점 펭귄 소녀는 수줍은 목소리로 또 인사를 한다/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펭귄소녀’ 중)
이번 시집이 추구한 변화는 사실 내용보다 형식에 있다. 한 편의 시 안에 앞 연과 이질적인 이미지를 가진 연을 한두 개씩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은 시가 많다. 이 때문에 시가 입속에 작은 시 한 편을 머금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연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설치미술 작품 같은 느낌이죠? 수록 시 전반에 부조화나 충돌의 효과를 의도하며 몽타주 기법을 적용했습니다. 연과 연 사이의 골짜기를 넓고 깊게 해서 그 사이에 메아리가 울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 생태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시인의 작품답게 도도새와 아프리카 코뿔소처럼 인간의 욕망 때문에 소멸하는 생명에 대한 애잔함을 드러낸 시도 눈에 띈다. ‘바보들’ 같은 시에는 멸종동물의 이름과 괄호 안에 멸종 연도를 나열한 것이 그대로 시어가 되기도 했다. 이런 소멸과 부재에 둔감한 현대인의 모습에 한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내 마음 안의 바보는 언제 깨닫게 될까/내 마음 안의 부처는 언제 깨닫게 될까’(‘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중)
“우리가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지구도 태양도 허공이 있기에 운행할 수 있지 않나요. 고독하고 막막한 공간이지만 시작도 끝도, 안도 밖도 없는 허공 같은 마음을 가지면 우리네 삶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