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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안영식]응답하라! 담배를 피우려는 者

입력 | 2013-11-22 03:00:00


안영식 스포츠부장

담뱃값 인상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길거리 흡연 금지법도 발의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담뱃값이 가장 저렴하고, 흡연율은 최고 수준이어서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게 그 이유다. ‘표심’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가 매번 세법 인상안을 통과시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리지갑’ 월급쟁이와 마찬가지로 애연가들은 자신이 세원 마련의 ‘봉’으로 여겨지는 듯해 씁쓸할 것이다.

담배에는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 등 수많은 유해 성분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폐암을 비롯해 구강암 췌장암 등 각종 암과 만성 호흡기질환의 주범으로 꼽힌다.

금연이 좋은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암 발생 원인을 줄일 수 있는 것은 기본. 금전적으로는 1년에 100만 원 이상 절약할 수 있다. 피부가 깨끗해지고 치아 건강도 좋아진다. 찌든 담배 냄새가 사라지면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더 사랑받을 수 있다. 흡연자보다 숙면할 수 있어 아침에 몸이 가볍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와 담배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한마디로 필요악(必要惡)이다.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말하는 선수와 감독이 많다. 이는 바로 니코틴 ‘덕분’이다. 폐를 통해 혈액에 흡수돼 뇌에 전달된 니코틴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카페인처럼 흥분제 작용을 하는 동시에 뇌세포의 정보 전달을 방해해 진정제 역할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은 공수 교대 시 더그아웃 뒤 감독실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직전 이닝의 분을 삭이고 다음 이닝 작전을 구상한다. 감독이 이용하지 않을 땐 고참 선수의 차지다. 실제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외 야구 스타 중에는 담배를 즐긴 선수가 많다.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 행크 에런은 타격 연습 때 시가를 물고 있을 정도였다. 조 디마지오는 56경기 연속 안타 행진 중에도 줄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국내 투수 최초로 100승-200세이브를 기록한 김용수는 ‘흡연파 선수’였지만 40세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세상은 결과를 중시한다. 운동선수의 흡연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류현진(LA 다저스)이다. 그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 달리기 훈련에서 꼴찌를 한 뒤 현지 언론으로부터 “담배를 끊으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14승 8패(평균자책점 3.00)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자 흡연 논란은 사그라졌다.

종목 특성상 골프는 야구보다도 담배에 관대하다. 현역 프로골퍼 중 존 댈리, 미겔 앙헬 히메네스는 ‘체인스모커’로 유명하다. 애연가 주말골퍼에겐 OB를 냈을 때 담배만 한 신경안정제가 없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 이후 국내 골프장의 담배 자판기는 대부분 철거됐다. 프로샵의 셔터가 내려진 밤늦은 시간에는 담배를 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스카이72 골프장은 식사 자리가 길어져 오후 10시 이후 담배를 찾는 내장객에게는 담배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프런트는 담배판매권이 없어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가연동제로 담뱃값이 결정된다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영국 호주처럼 ‘담배 한 갑 1만 원 시대’가 될 것이다. 금연은 세계적 추세이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요즘 방영되는 TV 드라마 ‘상속者들’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긴 부제가 달려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려는 자, 세금 부담을 견뎌야 하리라. 비흡연자들의 따가운 눈총이라는 심리적 부담도 함께.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