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주(1962∼)
다래 덩굴처럼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
죽어 쓰러진 나무들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엉킨 덩굴에 매달려 쪼그라든 몇 개 산열매처럼
지워져가는 길의 가지 끝에서
돌무더기 쌓아놓은 흔적만 남아 있는
화전민들의 옛 집터
증거해야 할 아무 자랑도 없이
부서져 내리지 못하는 이끼 덮인 돌 위의 돌
언제부터 자란 오미자 덩굴이
쓸쓸한 흔적의 정원에 공중 그물을 엮었다
스웨터를 장식하는 구슬 같은
오미자 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햇살의 정적을 빨아먹으며 몸을 붉혀가는 오미자 열매
스스로 제 고독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시인 정용주가 책 보따리와 CD 보따리, 쌀 한 자루를 짊어지고 치악산 깊은 산속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 2003년이란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그렇게 될 것은 결국 그렇게 된다’에는 그 ‘몽유거처(夢遊去處)’에서의 10년 세월이 녹아들어 있다. 늘 쫓기듯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건 부럽지만,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자연 속에서 늘 지낸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외로운 순간을 주지도 않고, 또 우리 도시인은 외로운 순간을 두려워한다. 스스로 로빈슨 크루소가 된 그는 강한 사람이다. 강한 자만이 자연을 얻는다. 비밀정원도 있고, 고독이 여물어가는 삶을 사는 복 받은 사람! 우리는 어쩌다 한 번 이런 기회를 갖는다.
열매도 풀도 제 고독을 빨갛게 완성시키는 풍경이 고즈넉이 생생한 ‘비밀정원’. 서경시(敍景詩)가 이리 실할 수 있구나!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