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김정후 지음/328쪽·1만6000원/돌베개제철소 부지에 친환경공원 짓고 가스저장고, 공동주택으로 활용‘유럽의 재생 프로젝트’ 소개
영국 런던의 수력발전소를 개조한 ‘와핑 프로젝트’의 레스토랑. 수력발전소 내부의 설비를 대부분 그대로 둔채 독특한 인테리어로 활용했다. 돌베개 제공
1890년 건립된 와핑 수력발전소는 주변 항만과 런던 전역에 쓰이는 전기를 생산하다 수력발전의 효용성이 떨어지자 1977년 문을 닫았다. 영국 정부는 이를 보존 건물로 지정했고, 이 건물의 가치를 알아본 호주 출신의 예술가 줄스 라이트가 건물 사용 권리를 인수했다. 건물 자체를 그대로 둔 것은 물론이고 발전소 내부의 설비 시설도 멋진 인테리어로 여겨 대부분 원래 위치에 둔 상태에서 녹과 기름때만 제거했다. 7년의 노력 끝에 이곳은 갤러리와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했다. 녹슨 기계 옆에서 식사를 하고 비밀창고 같은 지하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이곳은 곧 런던의 명소로 떠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점은 애초에 이들 산업유산이 미래에 성공적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산업용 건물이라고 하면 디자인보다 기능이 우선시되는 편이고 아예 혐오시설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유럽의 많은 도시는 주요 산업용 건물이 도시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현상 설계를 할 정도로 신중했다. 1899년 건립된 빈의 가스 저장고는 유서 깊은 도시 분위기에 걸맞게 붉은 벽돌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고, 제1차 세계대전 때 건축가 필리프 자코브 맨즈가 디자인한 독일 카를스루에의 탄약공장은 수려한 건물로 평가받았기에 훗날 미디어아트센터로 변신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건물 재활용은 경제적일 뿐 아니라 역사성과 친환경성이라는 가치도 담게 된다. 산업유산이 재활용되는 과정에서 지자체와 시민들이 오랜 논의와 치열한 협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은 시민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내 공무원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서울에는 옛 정수장 시설을 생태공원으로 재활용한 선유도공원, 버려진 수도가압장을 개조한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