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대물림 되는 대한민국… ‘애완의 고리’ 끊을 방법은◇애완의 시대/이승욱 김은산 지음/256쪽·1만4000원·문학동네
‘애완의 시대’는 우리 시대의 부모는 국가주의에 길들여졌고 자식 세대는 그런 부모에게 길들여진 채 부모의 대리 인생을 산다는 점에서 ‘애완의 삶’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의 20, 30대들은 정서적인 지체와 정신적인 미숙함의 문제를 한 번도 성찰해 보지 못한 채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부모처럼.” ⓒAlberto Ruggieri
이들이 세대 문제에 주목한 것은 지난해 대선이었다. 박근혜 지지표가 몰렸던 40대 이상과 문재인 지지표가 많았던 20, 30대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들은 이를 위해 현재 50대의 주류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와 그들의 20, 30대 자녀인 에코 세대(1979∼1992년생)의 상담 사례를 토대로 그들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봤다.
두 세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전후의 폐허와 가난을 경험했지만 산업화의 역군으로 자부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겐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 결핍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개인적 욕망과 근대화의 달성이라는 국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으로 그들은 일에만 매달렸다.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기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하나를 쌓아왔다. 집단생활을 겪으며 체득한 눈치와 사회성으로 윗사람에게 적당히 손을 비비지만 필요할 때는 ‘개길’ 줄도 알고 아랫사람을 누르거나 때론 그들의 공을 가로채는 데도 ‘선수’였다. 하지만 부부간의 정서적 유대나 자식들과의 교감엔 ‘젬병’이었다.
저자들은 이렇게 다른 두 세대 간에 묘한 ‘대물림 현상’을 발견한다. 부모 세대가 국가에 의해 동원된 길들여진 삶을 사느라 개인적 삶을 팽개치고 살았다면, 자식 세대는 그 부모에 의해 길들여진 삶을 사느라 역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부모 세대가 국가적 부름에 순응하는 애완(愛玩)의 삶을 살았다면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상실감을 달래줄 애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부모 세대의 ‘결핍’과 자식 세대의 ‘잉여’가 조응한다는 분석도 날카롭다. 부모 세대의 궁핍에 대한 불안은 오늘날 물질적 풍요를 낳았지만 돌봄과 배려 같은 정서의 결핍을 초래했다. 부모들은 이런 결핍을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라며 자식들에 대한 정서적 착취로 대신한다. 자식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개입하면서 뜻대로 안 될 경우 독설과 폭언을 일삼는 TV 드라마 속 괴물 같은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의 결핍과 상실감을 채워줄 볼모가 된 자식 세대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는 ‘메마른 삶’을 산다. 아웃풋과 효율성의 주판알만 튕기다 보니 남다른 삶은 꿈도 못 꾼다. 상처받을까 봐, 뒤처질까 봐 연애와 육아도 남이 대신해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자식 세대에겐 앎만 있고 삶이 없다. 앎을 구체적 경험과 하나로 통합해 주체적 삶으로 만들 줄 모르는 ‘미생(未生)’들이다. 이런 자격지심은 자신감의 상실을 낳고 스스로를 ‘잉여세대’라 자조하게 만든다. 이영훈의 소설 ‘체인지킹의 후예’에서 묘파한 것처럼 “우리는 어디선가 있었던 것의 흉내일 뿐이야. 위대한 과거의 지루한 모방이야. 비참한 소재의 처참한 패러디일 뿐이야”라는 자기 비하에 시달리는 것이다.
생생한 상담 사례와 풍부한 인문학 텍스트를 결합한 이런 분석은 확실히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어설프게 철든 어른은 현실중독자일 뿐”이라는 우디 앨런의 말을 인용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정신적 퇴행이라고 단언하는 후반부 결론엔 동의할 수 없다. 저자들은 에코 세대가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그보다 더 복잡한 정치현실에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