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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한국유물, 캐비닛 속에 찬장그릇처럼 쌓여 있었다

입력 | 2013-11-25 03:00:00

파리의 박물관 수장고를 둘러보니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한국실. 기메박물관은 진귀한 한국 보물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지만 소장 유물 가운데 극히 일부만 전시되고 있다. 파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1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지하 2층.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이 ‘한국(Cor´ee)’ 이라고 적힌 수장고 문을 여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를 중심으로 고려청자와 조선목기, 민화들이 즐비했다. 한국 언론에 첫 공개한 수장고에는 한국 유물 1000여 점을 소장했다는 기메 박물관답게 휘황찬란한 보물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이내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수장고 방문 직전 둘러본 한국 전시실에는 100여 점만 전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1년 한국실을 세 배(360m²)로 확장해 늘어난 것이었다. 일반 관객이라면 나머지 900여 점은 파리에 가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캉봉 연구원은 “1만5000여 점씩 있는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소장 유물 대비 전시실이 매우 넓은 편”이라고 설명했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

사정은 제3세계 유물로 명성 높은 게브랑리 박물관이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관요(官窯)의 중심 세브르 도자기전당도 엇비슷했다. 각각 700여 점, 250여 점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했지만 전시 수량은 겨우 3점과 30여 점이었다. 19일 방문한 파리시립 체르누치 아시아유물박물관은 이응로 화백(1904∼1989)의 작품을 120여 점이나 갖고 있지만 전시관에는 단 1점도 걸려 있지 않았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조만간 이런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한류를 타고 프랑스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진 덕분이다. 특히 2014년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많은 프랑스 박물관들이 너도나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메 박물관이나 세브르 도자기전당은 물론이고 한국과 딱히 연관성을 찾기 힘든 파리 장식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14일 만난 올리비에 가베 장식박물관장은 “한국의 전통장식 공예가 1, 2명은 이미 섭외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의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전시로 파리 시민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지속성이었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중국과 일본은 이미 한때의 트렌드를 넘어 엄연한 문화사조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소장 문화재를 산술적으로만 따져 봐도 기메 박물관은 15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세브르 도자기전당도 양국 유물을 수천 점씩 갖고 있었다. 18세기 중국, 19세기 일본풍(風) 유행이 불었던 것을 감안해도 상대적 격차가 컸다. 세브르 도자기전당의 다비드 카메오 총관장은 “한국 특별전이 성공하고 관심이 증폭된다면 한국 유물 전시 대우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전시들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깔린 발언이었다.

세브르 도자기전당이 소장한 대다수 한국 유물은 방진, 방습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캐비닛에 방치돼 있었다. 세브르=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런 우려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13일 세브르 도자기전당 수장고를 찾았을 때 담당 학예사는 유물들이 어느 시대 것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방습, 방진 시설도 갖추지 못한 캐비닛에 여염집 부엌 찬장처럼 문화재가 쌓여 있었다. “한국 유물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말은 립 서비스로 들렸다. 700여 점이나 소장한 게브랑리 박물관은 구한말 것으로 짐작되는 여성 저고리 3점만 상설 전시했다. ‘가장 오래된 한국 유물은 뭔가’라는 질문에는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런 만큼 한국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파리1대학(팡테옹 소르본) 문화재보존복원학과의 정수희 박사는 “수교 130주년이란 좋은 기회를 맞은 만큼 학술 교류를 통해 공동 보존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며 “일본이나 중국이 정부 기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음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스틴 시미지 체르누치 박물관장도 “오히려 1970년대까지는 다양한 교류가 지속되다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뒤에) 네트워크가 끊겼다”며 “프랑스 문화계도 최근 악화된 경제 상황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만큼 틈새를 공략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이 10∼20일 프랑스에서 진행한 ‘KPF 디플로마-문화재 보존과 복원’ 연수과정을 통해 취재가 이뤄졌습니다.

파리·세브르=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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