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사관서 발견된 명부 분석… 조선인 희생자 250명으로 집계
1923년 9월 일본 간토대지진 때 피살된 조선인에 대한 기록(왼쪽). ‘일본 헌병에게 총살당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1953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에 수록된 내용이다. 오른쪽 사진은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니혼바시(日本橋) 부근에서 복구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 국가기록원 제공·동아일보DB
24일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등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명부 67권에 수록된 피해자 23만여 명 가운데 간토대지진 때 피살된 수는 250명으로 분석됐다.
250명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가운데 피살 정황까지 기록된 것은 10% 남짓.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타살’이라는 간단한 내용만 적혀 있다. 그러나 일부에는 잔인했던 학살 정황이 기록돼 있다. 본적이 울산으로 조사된 박남필 씨(당시 39세)는 ‘곡갱이(곡괭이)로 학살됐음’이라고 적혀 있다. 경남 창녕 출신의 한용선 씨(23세)는 ‘쇠갈쿠리(쇠갈퀴)로 개 잡듯이’라고, 경남 함안이 본적인 차학기 씨(40세)는 ‘일본인이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학살했다’는 식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정부 관계자는 “총이나 칼이 아닌 흉기로 자행된 학살은 가해자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당시 폭도로 변신한 자경단원과 이에 동조한 일반인들이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경단은 전직 군경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이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