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용 성균관대 의무부총장
전립선(샘)암은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비뇨기계 종양 중 하나로 미국에서는 가장 발병 빈도가 높은 남성 암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10년간 매년 12.6%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식생활의 서구화 추세로 봤을 때 한국도 머지않아 가장 흔한 남성 암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스럽게도 전립선(샘)암의 80∼90%는 수술로 완치된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적절한 수술을 했는데도 오히려 병이 악화돼 결국 주변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되는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남성호르몬 차단 요법을 시행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기 전이성 전립선(샘)암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매우 안타까웠다. 그런데 2년 전 몸에서 생성되는 남성 호르몬은 물론이고 암세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남성 호르몬까지도 완벽하게 차단해 말기 환자도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이 개발됐다. 2012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 약의 사용을 허가해 국내 환자들도 곧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어느 곳에 우선적으로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생명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의사의 첫째 소임이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이는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정부도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보건의료 분야의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립선(샘)암 중증질환자는 전체의 2%인 말기 환자들이다. 이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신약을 보다 쉽게 쓸 수 있다면 적어도 전립샘암 분야에서는 중증질환 보장성을 충분히 강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희망 없이 살아가는 A 씨를 외래진료실에서 만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없어 느끼는 한계의식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의료선진국을 표방하는 한국에서 아직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신약을 쓰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하는 환자를 대할 때면 의사로서 가끔은 두렵기까지 하다. 차라리 안타까울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길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