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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외국인 근로자 ‘마지막 길’에 정성… 따뜻한 사장님

입력 | 2013-11-26 03:00:00


22일 광주 광산구 신가동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샤인왼투 씨의 빈소에 (주)현대금속 사장 김일성 씨가 분향을 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30대 외국인 근로자가 음주뺑소니 사고를 당해 숨을 거뒀다. 그는 한국에 가족이 없었지만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그가 일했던 중소기업 사장이 친아버지처럼 마지막 길을 챙겼기 때문이다.

미얀마 청년 샤인왼투 씨(33)는 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7월 한국에 왔다. 그는 광주 광산구 하남공단에 있는 중소기업 ㈜현대금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루 11시간을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면 뛰어와 들어줬다. 바쁜 작업시간에도 동료들에게 인사를 할 때는 항상 공손히 두 손을 모아 하는 등 성실하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통했다. 그는 4남매의 장남이었고 부모는 모두 돌아가 사실상 가장이었다.

샤인왼투 씨는 열심히 돈을 모아 미얀마에 공장을 차리는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 그는 휴일이던 16일 오후 8시 하남공단에서 미얀마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오후 11시 50분 사촌동생을 50cc 오토바이에 태우고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에 김모 씨(43)가 몰던 에쿠스 승용차에 오토바이가 들이받혔다. 사고를 내고 달아난 김 씨는 뺑소니 혐의로 구속됐다.

사고 직후 119구조대가 그를 조선대병원으로 옮겼다. 그가 이틀간 사경을 헤매는 동안 병상을 지킨 사람은 김일성 사장(60)이었다. 김 사장은 의료진이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고 말했으나 “일단 수술을 한번 해보자”고 호소했다. 의료진은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다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김 사장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샤인왼투 씨는 18일 오후 8시경 숨을 거뒀다. 김 사장은 미얀마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데려오는 등 장례 절차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샤인왼투 씨의 가족들이 항공료를 마련하기가 힘들고 수도에서 한창 떨어진 시골에 있어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족을 대표해 스님인 외삼촌(55)이 한국에 온다고 하자 스님 2명의 항공료를 송금해줬다. 유족들이 각종 증빙서류를 가져와야 장례식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샤인왼투 씨의 외삼촌이 입국해 22일 광주에 도착하자 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23일 낮 발인을 하고 그가 2년 4개월 동안 일했던 하남공단 현대금속 공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그날 오후 샤인왼투 씨는 광주 영락공원에서 화장돼 유골로 뿌려졌다. 그의 마지막 길을 미얀마 근로자 50여 명과 현대금속 직원 20여 명이 함께했다. 김 사장은 떠나는 샤인왼투 씨를 위해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아낌없이 썼다.

광주미얀마노동자쉼터 자원봉사자 임모 씨(58·여)는 “김 사장이 샤인왼투 씨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입원부터 장례, 보상절차까지 챙겨줘서 고맙다. 그는 정말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출신 조모아(한국명 한대웅·42) 씨는 “공장 밖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 직원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주는 고용주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 사장은 19세이던 1972년부터 금형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그러다 21세 때 영세 금형공장을 운영했다. 그가 운영하는 현대금속의 직원 20여 명 중 7명은 외국인 근로자다. 그는 사장이지만 여전히 금형 업무를 하고 있다. 금형작업을 하다 오른쪽 손가락을 모두 잃기도 했다. 김 사장은 “직원들은 한국인, 외국인을 떠나 모두 내 자식 같다”며 “자식이 불행한 일을 당했는데 어떤 부모가 챙기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