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준비, 금융선진화에 달렸다]<상>자산운용, 행복한 노후의 지름길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부장(55)은 퇴직 이후 생활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 자녀 가운데 막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그가 만 60세에 정년퇴직해야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내년에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데다 자녀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노후 대비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현금성 자산은 예금과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합해 3억 원. 김 부장은 “은퇴 후 생활비로 매달 400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준비한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한국의 50대 가운데 그나마 사정이 낫다.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이미 은퇴한 50대들은 당장의 생활비 마련에도 힘이 든다. 가장의 은퇴 후에도 한 가정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젊어서부터 자산을 잘 불리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노후 준비의 3대 축인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은 크게 정해진 금액을 받는 확정급여형(DB형)과 자금을 운용해 얻는 수익률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람 가운데 70.3%는 DB형, 20.8%는 DC형을 선택했다(나머지는 퇴직자가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 DC형을 선택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원금 보장형을 선택해 ‘사실상 DB형’ 비율이 9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DC형은 위험을 지더라도 투자수익률을 높이려는 사람에게 좋고 DB형은 원금 보장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바로 임금 인상률. DC형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직급이 오를수록 연봉이 팍팍 뛰는 경우 DB형이 유리할 수 있다. 반면 임금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DC형이 더 낫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함모 부장(51)은 회사가 2007년 11월 퇴직연금을 도입하자 주식 등에 투자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DC형을 선택했다. 6년이 지난 25일 현재 함 부장의 퇴직연금은 원금 1억4180만 원에 평가금액은 2억2190만 원이다. 연평균 8.4%의 수익률을 낸 결과다.
입사 시 월급 200만 원에, 연평균 임금 인상률이 3.95%(승진에 따른 임금 상승분 포함)인 중소기업 근무자가 30년 뒤 퇴직한다고 가정했을 때 함 부장처럼 DC형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DB형의 퇴직급여는 1억8420만 원이지만 DC형은 연평균 수익률이 4%일 경우 퇴직급여가 1억9189만 원으로, DB형보다 769만 원이 많다. 수익률이 7%로 높아지면 2억9760만 원으로 껑충 뛴다.
○ “덩치 키워 자산운용업 성장시켜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9월 현재 대기업 근로자 수는 251만 명, 중소기업은 1253만 명으로 중소기업 근로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DC형이 적합한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다. 김진웅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임금 상승률을 면밀히 고려해 자신에게 유리한 퇴직급여 유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DC형을 선택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DC형을 선택한 사람들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펀드가 꾸준히 성과를 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펀드자산 비율이 2011년 기준으로 20.8%에 그쳐 싱가포르(475%) 홍콩(417%) 호주(124%)에 비해 매우 낮다. 증시 변동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 펀드 수익률은 운용 규모가 커질수록 변동성을 낮추기 쉽다. 채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산운용산업의 규모가 커져야 인력에 대한 투자 여력이 확대되고 운용하는 개별 자산들의 위험도 분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GDP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낮다. 한국은 7%로, 홍콩(17%) 싱가포르(12%) 호주(11%)에 뒤진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이 비중을 향후 10년 내 1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저금리 시대에 개인이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면 자산운용사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에 투자해 그 과실을 개인과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자산운용 규모부터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